한국일보

신이 내린 술 COGNAC

2004-12-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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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 달콤하고 키스보다 황홀하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악마처럼 치명적인

아침저녁으로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제법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저녁 식사후 부부간에 혹은 친구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라도 나눌 때면 몸을 덥혀주는 맛있는 술 한 잔이 생각날 때가 있다.
소주나 위스키는 너무 강하게 느껴지고 가볍게 한 잔 하기에는 부담스럽기도 한데, 바로 이 때 좋은 코냑 한 잔처럼 잘 어울리는 술이 없다. 특히 ‘웰빙’ 문화가 확산되는 요즘, 독주나 폭탄주로 대변되는 술문화가 몸에 좋은 술, 고급술로 변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와인과 코냑에 대한 관심도 높아가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적포도주를 즐기기 때문에 미국인들보다 동물성 지방 섭취율이 2배나 높은데도 불구하고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율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학계의 연구 보고를 ‘프렌치 패러독스’라고 하고, 이 보고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곧이어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와인으로 만든 코냑 또한 심장병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코냑을 마시는 것은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코냑 한 병을 만들기 위해 무려 와인 12병이 소비되며, 와인과 마찬가지로 생산된 지역의 토양과 기후를 비롯한 주변 환경, 만드는 이의 장인 정신이 그대로 반영되는 술이기 때문이다.
X.O.급 이상의 고급 코냑이 아닌 경우라면, 얼음과 함께 언더락으로 마시거나 칵테일로 마시면서 가볍게 즐겨도 좋은 술이다. 그리고 운 좋게 최고급 코냑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100년, 200년 숙성된 ‘리샤드 헤네시’나 ‘루이 13세’를 맛볼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 환상적인 맛과 1시간 이상 지속되는 뒷맛에 반해서, 하루 저녁 나의 삶을 럭서리하게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중 최고


코냑이란?

코냑은 프랑스 코냑 지방에서 A.C. 법에 따라 규격에 맞게 생산되는 브랜디를 말한다. 브랜디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만들 수 있지만, 오렌지 카운티 정도 넓이의 코냑 지방에서 생산되는 브랜디만이 ‘코냑’(Cognac)이라고 명칭을 붙일 수 있도록 프랑스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브랜디는 과일의 발효액을 증류시킨 것으로 원료에 따라 포도 브랜디, 사과 브랜디, 체리 브랜디 등으로 불리는데, 포도 브랜디가 질이 가장 우수하고 가장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브랜디라 하면 포도를 원료로 하는 포도 브랜디를 말한다.
와인을 증류해서 만드는 것이 브랜디인데 약 1리터의 브랜디를 만들기 위해 9리터의 와인이 소모되는 만큼, 서양의 여러 술 가운데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바로 브랜디이다.
그리고 그 브랜디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것이 코냑이므로, 코냑은 서양에서 만들어지는 술 중 가장 비싼 고급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브랜디는 브랜디 와인(brandy wine)의 준말인데, 이 말은 네덜란드의 brandewijn 에서 유래된 말로, 태운 혹은 증류한 와인(burned or distilled wine)이라는 뜻이다.
중세기에 프랑스에서 만든 와인은 영국으로 많이 수출되었는데, 그 당시 세금은 물건의 부피에 따라 부과되었다고 한다. 보르도 북쪽에 위치한 코냑산 와인은 산도가 높고 당도가 낮아 다른 지역의 와인에 비해 인기가 없었고, 이에 따라 와인 제조업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와인을 증류해서 부피를 줄여 세금을 적게 내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와인을 증류해서 만든 것이 오드비(eau de vie), 혹은 생명의 물로 알려진 알콜농도 70% 이상의 브랜디 원액이다. 오드비는 매년 3%가 증발하므로 50년간 숙성되었을 경우 350리터가 100리터로 줄어들게 된다.
이 때 증발해 버린 오드비를 ‘천사의 몫’(Angel’s Share) 라고 부르는 것에서 그들의 풍미와 여유를 엿볼 수 있다.


제조법은?

코냑을 만들 때는 주로 생테밀리옹(유니블랑으로 불리기도 한다), 폴블랑쉬(Folle Blanche), 콜롱바르 종의 포도를 사용하는데, 포도를 수확하여 알콜도수 7~8%의 화이트 와인을 만든 후 그 이듬해 3월말까지 구리로 만든 전통 증류기를 사용해 두번 증류한다.
이 상태에서는 알콜 함량이 약 68%이고, 색이 전혀 없는데, 리모즈(Limoges) 지역의 산림에서 자라는 리무진 오크(limousine oak) 나무로 만든 통속에서 숙성되는 동안 황금색이 우러나온다.
오크통 속에서 조금씩 숙성되어가며 미세한 기공을 통해 이루어지는 산화과정에서 코냑의 맛과 향은 더욱 발전하며, 알콜 함량이 점차 낮아져서 40%가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각 통에 담긴 코냑들을 위스키처럼 서로 블렌딩하여 병에 담게 되는데, 때문에 코냑 제조 회사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맛을 매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헤네시(Hennessy)사는 블렌딩 총 책임자인 매스터 블렌더(master blender)를 7대째 한 가문에서 배출해내며 맛을 지켜온 자부심이 대단하다.
코냑은 생산된 해의 10월 1일을 기준으로 하여 최소한 2년 반이 지나지 않은 것은 판매하지 않는다. 숙성된 기간에 따라 각기 다른 등급이 표시되는데, 법적으로 (A.O.C.) 규정된 것은 쓰리 스타(3 Star) 하나 뿐이고, 그 외에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이 각 제조 회사마다 자체의 관습에 의해 정해진다.
대체로 오크통 속에 숙성된 지 3년 이상 된 것은 스타급, 5년부터는 V.O.(Very Old), 10년 이상은 V.S.O.P.(Very Superior Old Pale), 20년 이상은 X.O.(Extra Old), 30년 이상은 Extra로 표시된다.
숙성 기간이 더 긴 코냑일수록 맛과 향이 풍부하며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은 물론, 가격 또한 그에 비례하여 비싸지는데, V.S.O.P. 급은 병당 소비자 권장가격이 약 35~40달러, X.O.급은 100~130달러, Extra 급은 250~350 달러 정도이다.


헤네시








7대째 한 가문 부드럽고 여성적

코냑의 4대 업체 중 세계적으로 가장 매출액이 높고 규모가 큰 곳은 헤네시이다. 헤네시는 1765년 프랑스에서 군복무를 하던 아일랜드계 리차드 헤네시에 의해 설립되었다. 현재 연간 약 300만 케이스의 코냑을 판매하고 있는데, 역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7대째 한 가문에서 블렌딩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수세기에 걸쳐 맛과 품질의 일관성을 지켜왔다.
현재 헤네시는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사 소속인데, 설립자의 직계 8세손인 모리스 헤네시가 아직도 헤네시의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헤네시사의 V.S.O.P.는 후에 조지 IV세가 된 영국의 리전트 왕자로부터 1817년, ‘아주 오래되어 색이 옅은 최상급의 코냑’(a very superior old pale cognac)을 원한다는 주문서를 받고 제조되었다. 약 60가지 오드비를 블렌딩한 V.S.O.P. 코냑은 ‘프리빌리지’(Privilege)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1870년 헤네시가의 식구들을 위해 처음 만들어진 고급 코냑인 X.O.는 최상급 4개 지역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들어진 100여가지의 오드비를 블렌딩하여 만들어진다.
헤네시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코냑 리차드(Richard) 헤네시와 파라디(Paradis) 엑스트라도 X.O.와 비슷한 모양의 병 속에 담겨져 판매 된다. 1979년에 처음 만들어진 파라디 엑스트라는 25년에서 125년된 오드비 100여가지를 블렌딩하였으며, 설립자인 리차드 헤네시를 기념하여 1996년에 만들어진 리샤드 헤네시는 75년에서 200년간 숙성된 오드비 100여가지를 블렌딩한 것으로, 리샤드 헤네시에 블렌딩 된 대부분의 오드비가 1830년대에서 18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손으로 만들어진 바카라(Baccarat) 크리스탈 병에 담겨진 리샤드 헤네시는 병당 가격이 1,500달러에서 1,800달러이고, 한 잔 가격이 200달러를 호가 한다.


레미 마틴







마틴가 소유로 강한 남성상 표현

헤네시가 부드러움과 여성스러운 우아함을 갖추었다면, 레미 마틴은 강한 남성성으로 많이 표현된다.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말의 모양을 한 레미 마틴의 상징인 센토(Centaur)에서 느낄 수 있듯이, 레미 마틴사의 마케팅 또한 남성을 주대상으로 하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레미 마틴사 또한 헤네시에 뒤지지 않는 전통과 품질을 자랑한다. 레미 마틴사는 4대 코냑 제조업체 중 유일하게 소유권이 마틴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업체이다.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가 레미 마틴 코냑을 편애하는 바람에, 1738년 코냑 지방의 노른자위 땅인 그랑드 샹파뉴와 쁘띠뜨 샹파뉴를 레미 마틴에게만 소유하도록 하여, 현재 레미 마틴은 그 두지역에서 재배되는 포도로만 코냑을 만드는 유일한 생산자이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레미 마틴사는 병당 약 60달러 가격의 1738 아코드 로얄 코냑을 생산하고 있다.
1738 아코드 로얄보다 한 등급 위인 X.O.는 부채꼴 모양의 화려한 병에 담겨져 있으며 10년에서 37년간 숙성된 300여개의 오드비를 블렌딩하여 만들었는데, 원 포도의 85%가 그랑드 샹파뉴, 그리고 15%가 쁘띠뜨 샹파뉴에서 생산되었다. 병당 가격이 약 350달러에 달하는 레미마틴 엑스트라는 매우 모던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병에 담겨져 있다. 병의 두께가 얇아서 언뜻 매우 커보이기도 하는데, 그랑드 샹파뉴에서 생산된 포도 원액이 90%나 사용되었고, 20년에서 50년된 오드비를 블렌딩한 것이다.
레미마틴사에서 생산되는 코냑 중 최고급인 루이13세는 손으로 만들어진 바카라 크리스탈 병에 담겨져 있고, 100년 이하의 100% 그랑드 샹파뉴 포도만을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병당 가격이 1,500달러에 달하며, 병마다 개별 번호가 부여되어 병만을 수집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코냑 지방에만 약 400여개의 제조업체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4개의 업체는 헤네시(Hennessy), 레미마틴(Remy Martin), 마르텔(Martel), 쿠르브아지에(Courvoisier) 이다. 이 외에 한국에서는 카뮤(Camus)도 유명한데, 이는 카뮤가 공항 내 면세점 중 가장 큰 규모인 DFS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항 면세점에서 카뮤를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이유이고, 현재는 DFS가 헤네시 소유로 면세점에서 헤네시 코냑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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