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가들 “레이블은 내가”

2004-11-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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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 로쉴드(Mouton-Rothschild)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쟝 꼭토, 후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프란시스 베이컨, 키스 헤링, 앤디 워홀, 헨리 무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모두 프랑스 와인 ‘샤토 무통 로쉴드’(Chateau Mouton Rothschild)의 와인 레이블을 그린 사람들이다. 전세계 최고 품질 와인 중 하나로 인정받는 무통 로쉴드는 이러한 세계적인 화가, 조각가 등의 예술가들이 번갈아가며 그려낸 와인 레이블을 부착하고 판매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예술가들이 그야말로 땡전 한푼 안 받고 와인 레이블을 그려준다는 사실이다. 돈 대신 이들은 자신의 그림이 들어간 빈티지의 와인 1케이스를 포함한 무통 로쉴드의 와인을 받는다. 이들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그림이 무통 로쉴드의 레이블로 사용된다는 것은 그들의 예술가적 자존심을 만족시켜주는 영광스러운 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무통 로쉴드사의 와인은 마고(Margaux), 라투르(Latour), 라피트 로쉴드(Lafite-Rothschild), 오브리옹(Haut-Brion)과 함께 프랑스 보르도 지방 그랑 크루 1급 와인 중 하나이다.
나폴레옹 3세가 1855년 파리 박람회를 위해 보르도의 와인들을 1급부터 5급까지 당시의 가격에 의거해 정해놓은 그랑 크루(Grand Cru) 시스템은 150년 가까이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변하지 않았다. 1973년 2급이었던 무통 로쉴드의 와인이 1급으로 승급한 것이 바로 그 예외적인 사건이다.
무통 로쉴드는 보르도 메독 지역 뽀이약(Pauillac)이라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188에이커의 포도밭에서 연간 2만~2만5,000 케이스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천혜의 자연적인 조건을 갖춘 이 포도밭은 원래 브란느 남작가(Barons de Brane)의 소유였다가 1853년 금융업으로 유명한 영국의 나타니엘 로쉴드가 이 포도밭을 사들인 후 무통 로쉴드라고 이름지었다.
나타니엘의 증손자인 필립(Philippe) 로쉴드 남작이 소유주로 있던 60년간, 그의 무한한 노력하에 현재의 최고급 와인 무통 로쉴드가 가능하게 되었다. 1988년 타계한 필립 남작의 뒤를 이어 외동딸 필리핀느(Philippine)가 현 무통 로쉴드를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 보르도 메독 지방의 대부분 와인 생산업자들은 원래 포도를 재배하고 수확해서 포도주를 만들고 나면 그들의 할 일을 다 하는 것이었다. 포도주를 병입하고 레이블을 부착해 판매, 유통하는 것은 상인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1924년 필립 로쉴드 남작은 와인을 만들고 병입, 레이블 부착, 판매, 유통되는 모든 과정을 직접 책임지겠다고 발표하였고, 이는 현대 와인 산업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앤디 워홀이 그린 레이블


바실리 칸딘스키가 그린 레이블


후안 미로가 그린 레이블


헨리 무어가 그린 레이블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레이블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레이블


와이너리의 이름이 그 와인의 얼굴이 되었고 상표가 되었고 브랜드 네임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필립 로쉴드 남작은 와인의 얼굴인 와이너리의 이름을 좀 더 확실히 알리기 위하여 와인 레이블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1924년 유명한 디자이너 쟝 칼루에게 레이블을 맡기면서 자신이 친분을 맺고 있는 유명 예술가들에게 매해 레이블을 맡겼고, 1946년부터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최고 예술가가 매년 번갈아가며 와인 레이블을 제작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특히 무통 로쉴드의 와인 레이블이 유명해진 것은 1945년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유럽이 승리의 무드에 빠져있을 때, 승리를 예견하며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었던 영국 수상 처칠의 V 사인이 레이블에 사용되었을 때이다.
그후 1946년 빅토르 위고의 증손자인 화가 쟝 위고, 1947년 프랑스 최고의 극작가로 명성을 떨쳤던 쟝 꼭토, 1948년 화가로 더 많이 알려진 프랑스 여류 시인 마리 로랑생 등을 거치면서 1955년 조르쥬 브라크, 1958년 살바도르 달리, 1964년 헨리 무어, 1969년 후안 미로, 1970년 마르크 샤갈, 1971년 바실리 칸딘스키, 1973년 파블로 피카소, 1975년 앤디 워홀 등 기라성같은 예술가들이 매년 기꺼이 무통 로쉴드의 레이블을 만들어냈다.
1974년 이후에는 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멕시코 등지의 화가들도 참여를 하였고, 이제는 무통 로쉴드를 통해서 20~21세기 미술사에 등장하는 최고 작가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엔 1998년 멕시코의 화가 루피노 타마요, 1999년 프랑스의 디자이너이며 포스터 아티스트인 레이몽드 사비냑, 2001년 미국의 행위 예술가이면 화가인 로버트 윌슨 등이 최근 참여한 예술가들이다.
무통 로쉴드의 와인은 레이블 때문에 더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미술책에서나 보던 화가들이 그린 레이블이 부착된 와인을 마시는 것은, ‘와인이 바로 문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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