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하며 입양시킨 딸 생각에 평생 죄책감 못떨쳐 ”
2004-09-30 (목)
28년만에 딸 하나씨와 상봉 서성호씨
“딸을 내 일생에서 지워버리려고 했지만 끝내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 24일 오클랜드 박물관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한국입양인협회주최 세미나에서 한 아버지의 참회의 고백이 자신을 버린 생부모에 일말의 원망을 품고있던 입양인들의 마음을 울렸다.
자식을 입양시켜야만 했던 생부모의 마음을 토로한 사람은 더블린에 거주하는 서성호(56)씨였다.
서성호씨가 한 살박이를 입양기관에 보내고, 그후 28년이 지나서야 다시 찾아낸 것은 마치 백사장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같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딸 ‘하나’가 태어난 것은 1974년 12월 18일. 이듬해 아내와 이혼한 서씨는 젖도 떼지 않은 딸을 1975년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겼다. 그후 재혼해 새로이 3남매를 두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서씨는 이국땅으로 보낸 피붙이를 잊을 수가 없었다.
서씨는 1981년 미국에 이민을 결심했다. 재혼한 부인 또한 서씨의 생각에 적극 동의했다.
그는 국가정보원에 근무하던 조카사위에게 수소문했고, 홀트아동복지회로 이첩된 서씨의 민원은 홀트에 근무하던 조카사위 친구의 도움으로 딸의 행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씨는 딸이 ‘유숙애’라는 이름으로 인디애나주로 입양됐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미 장성해 결혼 후 두 아이를 가진 입양된 딸 하나씨도 생부모를 찾기 시작했다.
서씨는 지난해 10월 3일, “딸을 찾고 있느냐?고 묻는 하나씨의 전화를 받았다. 이메일을 통해 받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딸이 틀림없다고 확신한 서씨는 그해 10월 25일 플로리다로 날아갔다.
“처음에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던 딸이 DNA검사를 통해 혈육임이 확인되자 비로소 ‘대디’라고 부르더군요
올해 초 딸은 사위와 함께 서성호씨가 사는 플레즌튼으로 이주해왔고, 아버지가 근무하는 KNA 전자회사에 함께 입사해 이젠 장인과 딸, 그리고 사위가 매일 만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