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그 15기를 몰고온 노금석 대위

2004-09-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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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직후 미그 15기 몰고 귀순해 적 전력분석에 큰 공헌

“1945년 이후 늘 북한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고착상태에 빠지자 휴전협정이 맺어진 지 56일이 지난 1953년 9월 21일. 김포에는 중국 국적기를 단 미그-15기(Mikoyan Gurevich MiG-15bis) 한 대가 착륙했다.
북한공군 소속 노금석 중위(당시)가 한국전쟁 당시 미공군의 F-86 전투기와 필적할만한 성능을 가진 미그-15기를 몰고 귀순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B-29 폭격기가 북한의 주요 군 시설 및 남하하는 중공 지상군을 폭격하면서 미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북측의 미그-15기의 출현으로 인해 B-29기가 공중 요격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따라서 미공군은 전쟁 이후에도 미그-15기의 연구를 위해 미그-15기 기체에 현상금 10만 달러를 걸기도 했었다.
귀순직후 미공군 및 정보부는 노씨와 미그-15기를 오키나와 미공군 기지로 인도했다. 이곳에서 미국은 노씨가 증언한 북측 군사기밀과 미그-15기에 대한 정보를 통해 소련의 항공기술 발전에 대해 알게 됐다.
미그-15기 귀순조종사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노금석씨(72)가 베이지역을 방문했다. 노씨는 지난 1일(수) 산호세 한미봉사회관 강당에는 북가주 지역 기자들과 여러 인사들이 모인 가운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노씨는 귀순경위에 대해 “1945년 이후 반공주의자가 되어 늘 탈북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며 “북한 해군군관학교에 입대해서는 배를 타고 탈북하고 싶었고 공군이 되어서는 늘 전투기를 몰고 귀순하고 싶었다”고 증언했다.


노씨는 전쟁 중 귀순을 생각했었으나 공중 요격을 피하고자 휴전직후 귀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귀순이후 노씨는 오키나와에서 미국 정보부와 공군에 북한 공군의 주요 정보를 제공했으며 이후 델라웨어로 이주했다. 학교 졸업후 듀폰리서치 센터, 보잉, 록히드 및 GM 등지에서 근무했으며 지난 2000년까지 약 17년간 엠브리-리들 항공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미그-15기란?
1947년 12월 30일 시험비행이후 스탈린의 극찬을 받아 대량생산한 전투기. ‘한국전쟁의 에이스’라 불리는 소련의 예프게니 파블라예프는 미그-15기를 몰고 미전투기를 23회나 격추시켰다고 한다. (미공군 에이스인 맥커넬의 경우 공인격추 16회)
한국전쟁 당시 압록강을 넘어 남진하는 중공 지상군에 위협이 되던 B-29 폭격기를 요격함으로 유엔군의 큰 피해를 입혔다.

<유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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