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린케로(Trinchero)

2004-08-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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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맛 보세요”

‘좋은 값에 질좋은 상품 공급’사업모토
3세기 걸쳐 믿고 즐길 포도주 생산
‘한잔 용량 와인병’‘무알콜 와인’자랑
‘화이트 진판델’ 미국인들에 가장 인기

와인 애호가가 아니라면 트린케로(Trinchero)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트린케로 패밀리 에스테이츠(Trinchero Family Estates)가 미국 내 다섯번째 규모의 와인 생산 업체라고 한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터홈(Sutter Home)이라는 이름이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 치고 서터홈 화이트 진판델(Sutter Home White Zinfandel)을 한번쯤 안 마셔 본 사람이 없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연한 핑크색, 달달한 맛의 서터홈의 화이트 진판델은 미국인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와인 1위에 오를 만큼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와인으로 손꼽히는데, 이 화이트 진판델을 1972년에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현 소유주인 밥 트린케로(Bob Trinchero)이다.

현재 밥 트린케로는 ‘트린케로 패밀리 에스테이츠’의 회장이고, 그의 동생 로저는 부회장이며, 여동생 베라를 비롯해서 조카들까지 모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트린케로의 소유로는 ‘서터홈’ 외에도 그들의 이름을 딴 최고급 브랜드 ‘트린케로’, 호주의 ‘레이놀즈’(Reynolds), 북가주 아마도르(Amador) 카운티에 위치한 ‘몬테비나’(MonteVina), 저가 브랜드 ‘트리니티 오크스’(Trinity Oaks), 무알콜 와인 ‘프레’(Fre)가 있다.
트린케로 브랜드로 생산되는 와인만 해도 6가지 품종(카버네 소비뇽, 멜로, 프티트 베르도, 샤도네, 소비뇽 블랑, 메리티지 등)이고, 서터홈 브랜드로 생산되는 와인은 무려 15가지 품종(화이트 진판델, 화이트 멜로, 게부르츠트라미너, 모스카토, 셰닌 블랑, 피노 그리지오, 리즐링, 샤도네, 피노 누아, 시라, 멜로, 카버네 소비뇽, 진판델, 트리플 크림 등)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무알콜 와인 브랜드인 프레도 스파클링 와인을 비롯해서 7가지가 있으며, 바르베라, 산지오베제, 네비올로 등 이탈리아 품종의 와인만을 주로 생산하는 몬테비나 브랜드도 8가지, 레이놀즈와 트리니티 오크스 브랜드 또한 합계 20여가지 종류가 생산되니 그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다.
서터홈의 역사는 1800년대 후반 스위스-독일에서 이민온 존 토만(John Thomann)에 의해 나파 밸리의 중심부에서 시작되었다. 존 토만이 타계한 후 와이너리는 스위스 이민자 로이엔버거스(Leuenbergers)에게 팔렸고, 로이엔버거스가 ‘서터홈’이라고 이름지었다. 1947년에 뉴욕에서 온 마리오 트린케로(Mario Trinchero)가 와이너리를 사들이면서 트린케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800년대 후반에 와이너리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부터 현재까지 트린케로 패밀리 에스테이츠는 항상 일관된 모토로 운영되었다. 바로 ‘좋은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현재의 트린케로가 탄생할 수 없는 일이다. 품질의 일관성과 가격의 경쟁력 외에도 기술의 혁신과 상품의 쇄신이 꼭 필요한데다 트린케로가의 성공에는 약간의 운이 따랐다.
1972년, 아마도르 카운티에서 재배되는 진판델 포도로 빚는 와인을 좀 더 맛있게 만들어보려던 밥 트린케로가 우연히 만들어 낸 ‘화이트 진판델’은 진판델 적포도주보다 훨씬 더 가벼운 바디와 델리키트한 맛으로, 일순간에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와인이 된 것이다.
연한 핑크빛과 함께 가벼우면서도 과일향이 풍부하게 느껴지며 달콤한 맛의 화이트 진판델은 아마도 미국 와인업계가 창조해낸 최고의 와인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와인 초보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주스처럼 알콜농도가 낮은, 부담 없는 맛의 서터홈 화이트 진판델은 1972년, 연간 생산량 220케이스로 시작돼 1987년까지 미국 내 프리미엄 와인시장 판매량 1위를 고수해 왔다.
트린케로사의 기술 혁신은 화이트 진판델에서 안주하지 않고, 1989년 미국 최초로 1잔 용량의 와인을 병에 담아서 판매하는, ‘한잔 용량 와인병’을 생산하였다.
이는 치밀한 마켓 조사 결과, 많은 수의 미국 가정이 한번에 750ml 용량의 와인 한 병을 소화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간파한 결과로서, 다른 와이너리들 또한 트린케로의 뒤를 이어 한잔 용량의 와인병을 생산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더불어 1992년에 시작된 무알콜 와인 프레(Fre)는 현재 미국 내 무알콜 와인 중 최고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다.
트린케로사의 와인의 특징은 아무리 저가의 와인이라도 맛있다는 것이고, 나파의 다른 와이너리들과는 달리 프리미엄 와인을 적당한 가격에 공급한다는 점이다. 1998년에 시작된 고가 와인 레이블 ‘트린케로’의 경우 대부분 20달러 미만의 가격이고, 가장 비싼 와인이라도 50달러를 넘지 않는다.
서터홈을 비롯한 트린케로사 소유의 다른 레이블들은 대부분 병당 12달러 미만이므로, 누구나 부담없는 가격에 맛있는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맛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와 자취가 증명하듯이, 트린케로사가 만들어내는 와인의 품질은 가격에 상관없이, 3세기에 걸쳐 믿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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