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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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과 사투 장면 즉석 프린팅 T-셔츠 기념품 팔아요”

2004-07-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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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현장 마스코트 릭 웨스트 가족
15년째 소방관 찾아 100여곳 출동

산불시즌이 시작되고 남가주 이곳 저곳에 검붉은 불꽃이 넘실대면 수천명의 소방관들의 목숨을 건 진화작전이 펼쳐진다. 지난 15년 동안 이들 산불진압 소방관들이 대거 모이는 곳이면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있는 릭 웨스트(54·리노 거주) 부부와 6자녀는 이제 산불 현장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이들의 가업은 티셔츠 비즈니스. 이동 트레일러에 천막과 캠핑도구, 실크스크린 프린터 한 대를 싣고 이들 가족은 산불진화 현장에 진을 친 후 현지의 특징과 소방관들의 진압 이미지 등을 문자 로고와 함께 티셔츠에 찍어 10~15달러에 파는 것이다.
고객은 화재진 압을 위해 각지에서 동원된 소방관들이다. 화재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파는 것은 ‘너무 가혹해서’ 팔지 않는 것이 이들의 상도덕이다. 화재 진화 후 뿔뿔이 흩어지지만 당시의 불길과의 사투를 기억하려는 소방관들에게 메달이나 배지, 기념품 같은 용도로 현장감이 생생한 티셔츠를 제공하는 차원이지 결코 산불 피해를 이용해서 돈벌자는 목적만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산불 시즌이 아닐 때는 주로 리노와 새크라멘토에서 어린이 야구리그나 교회 등 단체 티셔츠 주문제작을 주로 해온 이들 웨스트 패밀리는 지난 2주간 남가주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로 정신없이 바빴다.
레이크 휴즈 인근 파인 산불 현장에 처음 출동했던 이들은 지난 주말에는 헤밋의 멜튼 산불 현장 모습을 티셔츠에 찍느라 분주했다.
가주 사상 최대의 산불 피해를 낸 지난해 10월의 세다 산불 현장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소방관들 옆에 있었고 애로헤드 쪽을 불태운 대형 산불 이미지도 그들이 만든 티셔츠에 담겨졌다.
산불 진압 소방관들이 기념 티셔츠를 자주 주문하는 것에 착안하여 직접 산불 현장에서의 티셔츠 제작 판매를 시작한 1989년부터 지금까지 이들이 커버한 산불 현장은 100여군데가 넘는다.
때로는 캘리포니아주 경계를 넘어서 몬태나주 산불지역까지도 출동하면서 이들은 산불의 전령사로, 지친 소방관들의 친구로 환영을 받고 있다. 이제 이들이 인명이나 재산피해가 너무 큰 재해지역이라는 이유로 주저하면 소방대장이 와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할 정도가 됐다.
소방관들과 같이 진을 치면서 이들이 위험에 처했던 때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때마다 소방관들은 이들의 보호에 최선을 다한다.
이들도 판매수익을 뚝 떼어 산불피해자 기금이나 소방관 지원 펀드에 기부하는 손길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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