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너럭/ 어머님과 냉면
2004-07-20 (화) 12:00:00
이보배<가정주부>
부모님과 함께 살면 물론 어려운 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좋은 점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가장 좋은 것은 여러 자식들 중 부모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부모님 그늘에 있으면 그 사랑의 빛을 더 쬐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결혼 처음부터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되었고 외며느리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나 역시 시부모님의 착한 며느리이길 원하고 마음을 다하여 효도하려고 하지만 돌아보면 후회와 부끄러움뿐이다.
아이들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랄 수 있어서 좋고 아이들이 아플 때나 남편이 출장으로 집을 비울 때도 어른이 계시니 든든하다.
그리고 더욱 좋은 것은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부지런함 검소함 알뜰함을 몸에 배어있는 어머님에게서 배우고 있다.
좋은 점을 나열하자면 발가락까지 곱아도 모자랄 것이고 그중 한가지만 더 얘기하라고 한다면 시어머님의 음식 솜씨를 고스란히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머님의 음식은 정갈하고 깔끔하며 그 맛 또한 구수하기 그지없다. 그 맛에는 내 어머니의 시어머니의 또 그 시어머니의 조미료 없던 그 옛날 그 어머니들의 손맛이 배어 있는 것 같다.
어머님의 요리하는 모습 또한 무척이나 정성스럽다. 마치 옛 여인들이 아궁이에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는 노력과 조심스러움이 느껴진다. 들릴 듯 말 듯 먼 곳에서 은은히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를 듣는 듯 어머님의 뒷모습은 정겹기까지 하다.
어머님께서는 모든 음식을 다 잘하시지만 특별히 잘 하시는 것이 있는데 바로 물냉면이다. 고향이 평양이라서 그런지 물냉면 솜씨는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으신다. 어느 유명한 식당의 냉면 맛도 그 맛을 내지는 못하리라.
이 냉면 솜씨 역시 내가 물려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냉면을 드신 분들이 으례히 육수 내는 방법을 물어오시는데 고기 고르는 것에서부터 삶는 과정과 간 맞추기까지 자세히 일러 주어도 그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우리 집 육수 맛엔 고부간의 사랑이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누구보다 냉면 맛을 잘 아는 사람은 아이들일 것이다.
육수에 간을 맞출 땐 시어머님과 며느리 그리고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옹기종기 앉아 맛을 본다.
가족들의 사랑을 이어주고 또 이웃에서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다 어머님의 특별한 음식 솜씨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