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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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 두번 울린다

2004-07-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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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측 변호사, 과거 전력까지 까발려 인격 살인

16세소녀 윤간·기숙사 여대생 사건
코비 케이스 재판 본말 전도된 양상

최근 끝났거나 진행중인 성폭행 재판이 과정이나 결과를 보면 성폭행을 가한 당사자를 재판하기 보다는 성폭행 피해여성을 재판대에 세우는 추세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나섰다.
성폭행 죄가 확인된다면 최소한 수십년 이상의 실형이 언도되기 때문에 특히 이름이 있거나 재력이 있는 피고의 경우 변호사들은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원고측의 실수나 과거잘못등을 폭로하여 배심원들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 경향이라는 것.
두달동안 전국의 관심을 끌다가 지난주 배심원 견해 불일치로 인한 재판무효가 선언된 ‘오렌지카운티 십대소년 3명의 16세 소녀 윤간 재판’이 그 대표적 케이스로 꼽히고 있다.
또 얼마 전에 끝난 ‘고교 축구선수들의 UCLA 기숙사 성폭행사건 재판’도 배심원들이 성폭행이 강제로 발생한 것인가 여부에 의견일치를 못내는 바람에 역시 재판무효로 끝이 났다.
그런가 하면 현재 진행중인 LA레이커스의 주전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호텔여직원 성폭행 재판도 코비 변호인단에 의해 ‘피해자라는 여성의 성전력이 너무 요란해서 코비를 모함하기 위한 음모일 수 있다’는 쪽으로 여론이 몰려가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일련의 성폭행 케이스가 모두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들의 성전력이나 평소행동등이 재판대에 올려지고 공개됨으로써 오히려 피해자들이 배심원들이나 일반에 의해 재판을 받는 셈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성편력이나 과거 행동, 말등이 재판의 핵심이 된 성폭행사건과는 사실상 관계가 없는데도 그같은 사생활과 배경등의 폭로가 배심원들의 유무죄 결정에 가장 중요한 잣대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오렌지카운티 윤간재판의 경우 피고들이 촬영한 비디오테입에 의해 이들 3명의 청소년이 술과 마약에 취해 의식이 없는 것 처럼 보이는 16세 소녀를 윤간하는 장면을 확실히 봤으면서도 배샘원들은 이들에게 걸린 24건의 혐의 모두에 대해 의견을 합치시키지 못했다. 변호사들이 “피해자라는 소녀는 집단섹스를 갈망하던 포르노배우가 소원이었다. 그는 피해자라고 할 수 없다”며그를 입증하는 증거나 증인을 내세워 적극적 변론을 편것이 주효한 셈이었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경우도 변호인들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한 19세 호텔직원이 며칠동안 여러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문란한 여성으로 몰아 부치며 그녀의 고발이 무고라고 주장을 펴고 있다. 또 그러한 설득이 먹혀 들어가는 추세여서 앞으로의 정식재판이 피고의 잘못보다는 원고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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