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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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전설적 배우 말론 브랜도는

2004-07-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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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웃 대부’

불운한 말년

결혼·이혼 반복하며 스캔들
아들, 누이 약혼자 살해후
딸마저 자살 충격 불행 잇달아


1일 타계한 말론 브랜도는 전설적 영화 작품인 ‘대부’나 수많은 명화를 통해 전 세계 최고의 배우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그의 개인 삶은 불행했다는 평이 나올 만큼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의 등록상표라고 할 수 있는 ‘반항적 연기자’(rebel actor)의 이미지는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몸에 밴 것이었다. 특히 말년에는 가족사의 불행과 파산지경까지 이른 재정난 등이 그를 괴롭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아들인 크리스천이 지난 90년 이복 여동생 샤이앤의 약혼자를 살인한 혐의로 기소돼 크게 상심했던 브랜도는 이후 샤이앤이 충격으로 자살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항상 대중의 시선 속에 살아야 했던 주변 환경도 그를 압박한 요인이었고, 급기야 그는 LA의 자택에서 사실상 칩거생활에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브랜도는 “내가 유명하고 부유했기 때문에 내 생애에서 너무도 많은 불행을 겪었다”고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브랜도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해 이혼한 아내가 3명이나 된다. 또 가정부, 비서를 비롯한 여러 여성들과의 스캔들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할리웃 최고의 배우였지만 할리웃을 경멸했다. 그는 “연기란 공허하고 쓸모 없는 직업이다”라고 내뱉기도 했다. 대표작 중 하나인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 대해서도 훗날 “아직도 그 영화가 무슨 영화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60년대부터는 특히 아메리카 원주민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한 활동가이기도 했다. 73년 두 번째 오스카상 시상식 때는 미국 정부의 인디언 인권유린에 항의, 한때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브랜도는 지난해 2월 울혈성 심부전증 진단을 받고 투병해 왔으며 10월에는 유언과 장례 지침을 담은 테입을 제작해 죽음에 대비해 왔다.
고인은 죽으면 화장하고 유골을 본인 소유의 폴리네시아 테티아로아섬 야자수 사이에 뿌려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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