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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비극’

2004-05-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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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비극’

마리아 수아레즈(가운데)가 25일 샌피드로 이민국 구치소에서 석방된 후 마중나온 엄마(왼쪽)와 친지들에 쌓여 활짝 웃고 있다.

섹스노예 5년·옥살이 22년

16세때 미첫발 멕시칸 여성
27년만에 자유의 몸
기구한 사연 각계탄원 결실

청운의 품을 안고 기회와 꿈의 나라 미국에 첫발을 디뎠던 멕시코출신 16세 소녀가 5년간의 성노예 생활, 22년간의 옥살이, 가석방후 추방위기를 겪고 24일 43세의 나이로 처음 미국내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찾게 됐다.
지난해 가석방된 후 중범죄 비시민권자는 추방한다는 연방법에 따라 곧 추방재판에 넘겨졌던 마리아 수아레즈(43)는 이날 이민국의 ‘체류허가’ 결정으로 석방되자 마중나온 친지들과 서명과 청원등으로 그의 추방을 막았던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했다. 너무 기쁜 탓에 흥분하여 한때 혼절하기까지 한 수아레즈를 보며 그녀의 86세 노모와 58세 언니등 주변사람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수아레즈의 딱한 사연이 보도된 뒤 그녀의 추방을 막는데 앞장섰던 힐다 솔리스 주하원의원(민주-엘몬티)은 로컬 커뮤니티와 그녀의 고향인 멕시코, 멀리는 브라질에서까지 합심된 성원과 언론보도가 성공적 결과를 끌어냈다고 같이 기뻐했다.
수아레즈는 “돈을 벌어 부모님을 돕겠다고 결행했던 첫 미국행 단추가 처음부터 잘못 꿰어졌지만 27년만에라도 미국은 결국 내게 기회를 선사했다”고 “나는 결코 희망을 포기 하지 않았었다”라고 말했다.
멕시코의 소읍에 살던 그녀의 불행은 1976년 시작됐다. 돈을 벌기 위해 합법적 경로를 통해 LA카운티에 도착한 소녀는 68세였던 안셀모 코마루비아스에 의해 그때부터 가정부 및 성노예로 갖은 폭행과 학대를 당했다. “외부에 말하면 멕시코 식구들까지 몰살하겠다”는 협박에 친지나 외부에게도 비밀로 부쳤다. 그기간이 꼬박 5년.
그녀의 삶이 또다시 꼬이게 된 것은 1981년 안셀모가 이웃 남성에 의해 살해당하면서였다. 살해장면을 목격했던 수아레즈는 현장의 핏자국을 닦아내고 범행에 쓴 각목을 감춘 것이 나중에 드러나 살인공모죄로 25년형을 받았다.
수아레즈는 옥중에서부터 “제발 미국에서 체류하게 해달라”고 청원을 계속했고 그녀의 사연과 호소에 LA 멕시코 커뮤니티는 물론 제3국가들까지 귀를 기울이게 됐다. 비센테 폭스 멕시코 대통령 영부인도 멕시코 프레스에 낸 공개서한을 통해 그녀의 선처를 호소했다.
또 30여명의 주의원들도 그녀의 망명을 허용해달라는 탄원서에 서명했고 솔리스 의원에게도 400통이 넘는 후원 편지가 답지했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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