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리건주의 피노누아 우아하고 부드러운 맛 으뜸

2004-03-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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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부터 재배 시작
기르기 힘들고 까다로운 품종

윌라멧 밸리 최적의 환경
습도·온도·강우량·토질 적합


보통 미국 와인이라고 하면 캘리포니아주에서 생산되는 카버네 소비뇽과 샤도네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와인’이 미국 와인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와인에 관한 서적 중에는 아예 ‘미국 와인’ 섹션 대신 ‘캘리포니아 와인’ 섹션만을 포함시킨 경우도 있다.
캘리포니아 와인이 양과 질에 있어서 미국 와인을 대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피노누아(Pinot Noir) 품종에 있어서만은 오리건주의 명성이 캘리포니아주를 앞서고 있다.
피노 누아는 주로 샤도네가 잘 되는 곳에서 잘 된다. 그 좋은 예가 프랑스의 부르고뉴와 샹파뉴 지방이다. 샴페인을 만들 때 사용되는 주요 품종이 샤도네와 피노누아인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피노누아가 잘 자라는 환경은 캘리포니아주의 나파나 소노마보다 좀 더 온도가 낮고 좀더 습한 지역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소노마 카운티의 러시안 밸리(Russian Valley)와 카네로스(Carneros) 지역이 훌륭한 피노누아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좋은 피노누아를 생산하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는 포틀랜드에서 남쪽으로 약 한시간 거리인 오리건주의 윌라멧(Willamette) 밸리만한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습도, 온도, 강우량, 일조량, 토질 등 포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환경을 일컫는 떼루아(Terroir)에 있어서 오리건주의 윌라멧 밸리는 부르고뉴에 버금갈만큼 피노누아 재배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곳이다.
피노누아는 와인 메이커와 포도 재배자들 사이에서 가장 기르기 힘들고 예측하기 어려운, 까다로운 품종으로 손꼽힌다. 어쩌면 어려운 만큼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품종이기도 하다. 피노누아의 문제점은 껍질이 얇고 씨가 다른 포도 품종보다 적다는 점이다. 보통 와인의 떫은맛을 내는 태닌(tannin)이 바로 포도 껍질과 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피노누아가 왜 다른 품종의 와인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껍질이 얇기 때문에 열매가 익어가는 동안 비가 많이 오면 포도송이에 곰팡이가 피기 쉬운 점이 바로 피노누아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리건의 포도 재배자들은 피노누아가 익어가기 시작하는 8월 중순쯤 많게는 거의 50%에 이르는 포도송이들을 잘라내고 포도가 서로 닿지 않도록 하며 좀더 적은 양의 포도가 더 많은 영양분을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시기를 9월말이나 10월로 늦출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좋은 포도를 재배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매우 비싼 방법으로, 오리건주의 에이커당 포도 수확량은 나파밸리에 비해 평균 절반 수준밖에 안된다.
해마다 일정한 양, 그리고 일정한 품질의 카버네 소비뇽을 생산해내는 나파밸리에 비해, 오리건주는 품질을 예측하기 어렵고 풍족하지 못한 양의 포도를 생산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좋은 품질의 피노누아를 생산해냈을 때의 기쁨과 만족감은 그 어느 곳에도 비할 바 없이 크다. 피노누아 생산 지역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프랑스의 부르고뉴 지방이다. 그렇지만 가장 음식과 잘 어울리고, 우아하며,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는 와인으로 꼽히는 피노누아를 생산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와인메이커들이 오래전부터 미국에도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이 오리건주에서 피노누아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부터이다.
이리(Eyrie) 포도원의 데이빗 렛과 폰지(Ponzi) 포도원의 딕 폰지와 낸시 폰지가 바로 그들인데, 그들은 처음에 캘리포니아에서 와인을 생산하려고 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싸자 오리건으로 와서 피노누아를 재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산 카버네 소비뇽이 프랑스 보르도산 카버네 소비뇽에 비해 손색이 없듯이 오리건산 피노누아가 부르고뉴산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품질임을 증명해보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부르고뉴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메이커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조세프 드루앵(Drouhin)이 오리건주 윌라멧 밸리에, 데이빗 렛이 처음 피노누아를 재배했던 포도밭 바로 옆 땅을 구입하고 피노누아 재배를 시작했으며, 그를 선두로 수명의 유명한 와인메이커들이 오리건에서 피노누아 재배를 시작하였다.
오리건의 피노누아 생산량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2003년에는 2002년 대비 피노누아 생산량이 19%나 증가한 1만72톤에 이르렀다. 오리건주의 윌라멧 밸리에서 생산되는 피노누아를 발견하면 한병 구입해서 마셔볼 만 하다.
이젠 윌라멧 밸리라는 이름만으로도 그 품질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이름으로는 Archery Summit, Cristom, Erath, King Estate, Ponzi, Tori Mor 등이 있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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