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나눈 처남매부”
2003-12-24 (수)
피와 물이 하나로 섞여 꺼져 가는 한 생명을 구원하는 짜릿한 감동이 시카고 한인사회에서 일어나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버펄로 그로브에 거주하는 조경식(62세)씨는 최근 처남인 유지형(49세)씨가 선뜻 기증한 ‘신장’으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부모도 아니요, 친형제도 아닌, 피안방울도 채 섞이지 않는 매형을 구하기 위해 신체의 일부를 주저 없이 내놓은 처남의 희생으로 인해 제2의 삶을 살게 된 것.
조씨가 본인의 신장기능에 심각한 이상 징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은 약 3년여전.
소변에 단백질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조씨는 이후 여러차례 병원출입을 통해 신장질환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게 됐다. 약물복용이다 음식조절이다, 1주일에 세차례 병원에서 피를 걸러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면도 조씨는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어긋난 조씨의 신장은 원상복귀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조씨의 부인이나 두 딸과는 혈액형이 맞지 않아 가족간의 신장이식은 생각할 수 없었다. 조씨가 지난 10일, 처남과의 신장이식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조씨의 신장기능수치는 정상인의 0.6~1.5 보다 무려 8개 가까이가 높은 8.1을 기록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와중에도 그러나 조씨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수 일대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은 의외로 가까운 주변인물을 통해 일어났다. 교통사고와 고혈압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조씨의 부인인 유향자(55)씨가 지난 7월, 한국을 방문중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씨는 아무런 기대 없이 그저 남편의 고통을 하소연하는 심정으로 동생들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는데 그 자리에서 아랫 동생인 유지형씨가 선뜻 신장을 기증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처음엔 조씨의 부인인 유향자씨도 동생의 말을 귀담아 두지 못했었다.
‘친형도 아닌데 매형을 위해서 신장을 내 놓겠느냐’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유지형씨가 스스로 건강진단을 받고 신장이식과 관련한 자료 수집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면서 신장이식수술과 관련한 준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10월 22일, 유지형씨는 부인인 이기순(46세)씨와 함께 본업까지 내팽겨 둔채 시카고를 방문, 수술과 관련한 여러 차례 검사과정을 거친 후 지난 12월 10일 마침내 매형과 함께 나란히 수술대에 올라 무사히 신장이식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조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장질환이 심각하게 발전하면서 생의 마지막을 이미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처남의 도움으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며 “평생 동안 처남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사는 것은 물론 나자신도 인생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유지형씨는 “어렸을 때 유독 누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비록 매형이지만 친형제, 친부모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요즘에는 의학이 많이 발달해 수술에 대해 별 걱정도 하지 않았다”며 의연함을 나타냈다.
유씨의 부인인 이기순씨 또한 “처음에는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신장을 이식한다고 해 당황했다. 그러나 평소에도 남 돕기에 앞장서는 남편의 성격을 알고 있어 기꺼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박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