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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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oica

2003-12-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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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포니 포엠]

▶ 이정훈 기자


베토벤(獨, 1770-1827)의 ‘에로이카(교향곡 3번, 영웅)’에 깊이 경도된 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라일락 향기가 가득 하던 5월, 친구의 누나를 나름대로 소년적 공상을 곁들어 연정을 품고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의 감정은 마치 라프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 듯한, 들뜬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이었다. 굳이 회상하자면 불필요하게 돋아난, 맹장의 헛배 앓음 같은 것이었다고나할까. 극히 몽상적인 환상으로 빠져들었던 시기였는데 물론 이는 자기 환상 속에서 저절로 시들어 버리고 말았지만 그 정신적 말기의 위기에서 구해 준 음악이 바로 ‘에로이카’였다.

사람은 왜 나서 누굴 좋아하는가? 사람은 왜 감정의 시듦 속에서 죽음과 절망 속에서 몸부림 쳐야하는가? 당시 ‘에로이카’ 속에는 이 모든 해답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영웅이 되라는 무언의 절규였다.
’에로이카’는 극단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잡아가는 매우 역설적인 곡이었다. 이를 두고 어느 철인은 혼돈속의 감동이라고 표현했지만 아마도 베토벤의 ‘에로이카’만큼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도 드물 것이다.
베토벤은 그의 가장 절정의 시기에서 죽음을 생각했던 불행한 예술가였다. 물론 여기서 불행이란 표현은 지극히 일반적인 견해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베토벤은 스스로 규정했듯 현실의 왕국보다는 이상(음악)의 왕국에서 정신의 영웅주의를 추구했다.
베토벤은 음악을 선(善)과 진실이 깃든 신의 선택적인, 구도적 요소로 갈파했던 것 같다.
그는 늘 자연 속에 파묻혀 음악을 통한 진실, 영감을 추구해 나갔는데 그의 수많은 명작들이 이를 증명하고 남은 바 있다. 악성 베토벤은 인류를 위해 자신이 뿌릴 수 있는 영성체(?) 제 1호를 ‘에로이카’로 장식했다.

1악장 알레그로 콘브리오- 빠르고 웅장한 곡으로 철선의 출항같은 장엄함이 깃든 곡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1악장에서 주로 쓰이는 선율로 특히 ‘영웅 교향곡’ 1악장에 걸맞는 형식이었다.
2악장 아다지오 앗사이- 교향곡 2악장에 등장하는 형식으로 느리고도 슬픈 주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행진곡 풍의 ‘영웅’의 2악장이야말로 장송곡으로도 유명하며 운명의 2악장보다도 시적인 격앙으로 이끌어가는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3악장에 등장하는 춤곡으로 ‘영웅’의 3악장에서는 교향곡 9번(합창)의 2악장과 함께 팀파니를 통하여 운명과 저항하는 베토벤 자신을 그리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4악장 알레그로 모토-비극적인 웅장함을 나타내고 있는 곡으로 ‘영웅 교향곡’의 4악장이야말로 휘날레적인 힘찬 기개, 중반부의 비극적인 선율등이 당시까지 그 유례를 찾아 볼수 없었던 가장 독창적인 음악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로이카’를 아십니까? 샤강을 일찍이 브람스를 좋아하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지만 사실 브람스가 있기 전에 베토벤이 먼저 있었다. 브람스 역시 베토벤을 본받아 교향곡 3번을 ‘영웅’으로 명명한 바 있지만 베토벤의 ‘영웅’과는 가히 비교될 수 없었다.
일찍이 베토벤의 ‘영웅’ 2악장에 등장하는 장송 행진곡만큼 멋들어지게 내면에 공명(감동)하는 작품도 드물었다. 장송곡이 미화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에로이카’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에로이카’의 장송곡은 장송곡의 대명사로 정평이 나 있는 곡이다.

베토벤의 ‘에로이카’는 귀로 듣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의지의 결정체였다. 청각을 상실한 베토벤이 쏟아낸 음악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에로이카’만큼 차원을 달리하고 있는 음악도 없었다. ‘에로이카’가 추구하고 있는 영웅은 세상에서 말하는 영웅이 아니라 슬픔을 이해하는 자, 즉 아름다움과 진실을 이해하는 자를 말하고 있다.
인간은 제 아무리 위대하다해 자신을 위한 장송곡하나도 남기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에로이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인류를 위한 장송곡이자 죽음의 미학이다. 세상의 그 무엇도 죽음의 절망을 뛰어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해될 수 도, 사랑할 수도 없다.
베토벤은 극단의 절망 속에서 오히려 불멸의 아름다움을 바라 보았다. 그것은 이 땅위의 불행한 자들에 뿌릴 수 있는 희망… 죽음을 도강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도취였다.
…내 음악을 이해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진 비참한 짐을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
’영웅’의 울림 속에 스스로를 장송해보는… 진실을 한번 맛보자.
Symphonia Eroica by Beethoven(1805년 비인에서 초연, 전 4악장, 연주시간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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