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입시철만 되면 대학 입시 문제로 온 나라가 야단이다. 매년 주요 언론들은 앞다투어 대학별 합격예상점수를 분석하고, 지원현황과 경쟁률, 합격자 발표를 연일 대서특필한다. 명문대 수석합격자에 관한 기사와 전국의 대학별, 학과별 등수매기기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주요사안이다. 한편에서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를 비판하면서도, 이렇듯 입시철만 되면 언론은 오히려 대학 줄 세우기에 앞장선다. 대학 입시 문제로 온 나라가 이렇게 떠들썩한 나라는 아마 지구상에 또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알 수 없다.
교육문제에 관한한 미주 한인들의 행태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인 신문들을 보면 주류 신문에 비해 대학 진학에 대한 기사가 유달리 많다. 거의 일년 내내 대입정보와 명문대 입학 가이드가 기사화된다. 누군가 국내외 한국언론의 그러한 보도는 한인들의 높은 교육열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한다. 하기야 자식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가고, 여의치 않으면 이산 가족이 되는 것도 마다 않는 실정이니, 그러한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해 입시문제를 주요 기사로 다룬다는 것도 수긍이 간다. 또 우리 국민들이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야 탓할 일이 못된다. 실제로 높은 교육열이 다른 나라에 비해 문맹률을 낮추었고, 빠른 경제성장에도 한 몫 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한 높은 교육열이 너무나 맹목적이라는 데 있다. 대학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안중에 없고 오직 입신출세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대학에, 그것도 가능하면 명문대학, 인기학과에 넣고 보자는 열망이 앞선다는 것이다. 물론 명문대를 나와 입신출세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특히 미국까지 와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주류사회에 당당하게 진출하는 것은 오히려 장한 일이다. 그것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고, 모두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대학 입학의 목표가 소위 ‘잘 나가고 돈 되는 직장’을 잡기 위한 것에 그친다면 그것은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서양중세의 수도원에서 비롯된 서양의 대학(University)이든 중국의 태학(太學)이든 대학 교육의 목표는 원래 보편적 진리를 탐구하고, 세계와 만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몸과 마음을 닦아 참된 지도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대학 교육의 목표는 전문적인 기능인이 되는 직업 교육이 아니라, 사회의 지도자로서 인격과 품성을 함양하는 교양교육 중심의 전인교육(全人敎育)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인격과 품성을 함양하는 전인교육을 운운하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프로패셔널한 전문가가 필요한 세상에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물론, 초를 다투며 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대학이 사회와 동떨어져 진리의 상아탑에 안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질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생활이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환경오염과 전쟁과 테러, 범죄, 가족 해체 등은 늘어나고, 우리들의 정서는 점점 메마르고 인심은 각박해지고 있다. 달리 말해 총체적 인간성 상실의 위기가 과학기술의 발달과 전문화의 정도에 비례하여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과학화와 전문화를 추구하다 상실해 버린 인간 심성의 근원적인 것을 되살려 내는 전인 교육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글자 그대로 ‘큰 배움’인 ‘大學’의 목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무엇이 대학에서 배워야 할 진정으로 ‘큰 배움’인가?
천년 전 중국의 유학자들은 큰 배움의 목표를 『大學』에서 3강령과 8조목으로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3강령은 밝은 덕을 밝힘(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함(親(新)民), 지극한 선에 머뭄(止於至善)이며, 8조목은 이 3강령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세목으로,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8가지이다.
결국 올바른 탐구(格物致知)와 바른 마음(正心)과 몸가짐(修身)으로 밝은 덕을 밝히지(明明德) 않고는 국가 경영과 세계 경영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大學』에서 말하는 ‘큰 배움’의 목표는 이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각박하고 타산적이 되더라도 교육의 본질적 목표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아니 그럴수록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살피고 궁극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이 자신만의 이기적 출세가 아니라 정녕 국가와 세계를 위한 큰 배움이라는 대학의 궁극 목표를 지향할 수는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