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언니. 우리 오빤 방학 하기 전엔 아마 못 볼 테니 맘 놓고 가져가세요.” 하며, 한결인 반쯤 내려진 차 창문 사이로 오빠의 애니메이션 DVD를 선뜻 내밀었다. 아무래도 주인도 아직 보지 않은 새 물건을 빌려간다는 것이 마음 한 켠이 불편하긴 했지만, 방학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하는 생각과 너무나 보고 싶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이 12작품이나 담겨져 있는 DVD라 “그래?” 하며 못 이기는 척 받아 들었다. 재미있냐고 연신 물어대는 남편의 질문을 귓등으로 들으며 첫 날은 그 유명한 ‘이웃집 토토로’로 첫 테잎을 끊고, 둘째 날은 나머지 11작품 중에 어느 것을 먼저 볼 것인가 하는 행복한 고민 끝에 ‘반딧불의 묘’라는 작품을 골랐다.
이 작품은 노사카 아키유키의 소설을 1988년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한 것인데, 일본을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묘사한 것이 생소했지만, 사진을 촬영한 듯한 치밀한 배경묘사로 전쟁의 참혹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소화(昭和) 1928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라는 주인공 세이타의 충격적인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되는데 역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자신! 의 모습을 지켜보는 주인공 세이타의 영혼의 독백과 함께 어린 동생의 영혼과 자신의 흔적을 훑어가는 형식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14세의 세이타는 고베에 미군 폭격기 B29의 대공습이 있던 날, 네 살짜리 여동생 세츠코와 함께 밖으로 대피하지만 어머니는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그 다음날 결국 숨을 거두고 군인인 아버지에겐 연락이 없다. 남매는 먼 친척 아주머니를 따라 나서지만 점차 냉대를 받고, 결국에는 집을 나와 어두운 방공호에서 살게 된다. 전시로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아이들을 더 이해하지 못하고 도와주지 않으며 떠나가는 아이들에게 냉랭하게 ‘사요나라’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누군가를 이해하고 돕는다는 것이 얼마나 ! 인간의 본성과 반대 되는 것인지 새삼 느꼈다. 그 들은 방공호 앞의 연못에서 반딧불을 잡아서 어두운 방공호 안에 걸어둔 모기장 안에 풀어놓는다. 그러나 다음날 반딧불은 모두 죽는다. 세이타는 세츠코를 위해서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죽음을 무릅쓰고 빈집에 들어가서 식량을 훔치기에 이르지만, 영양실조로 극도로 쇠약해진 세츠코는 결국 죽게 되고 그 후 전쟁은 끝났지만 세이타도 그 뒤를 따르고 만다.
절대적인 진리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상대성에 의해 판단되는 시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이 있다면 그 중 하나가 바로 전쟁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정당화 될 수 없으며, 가해자에게나 피해자에게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한국민간인 2명이 피격 당해 한국은 또 한번 이라크 파병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가 신중하면서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진리를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