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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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 악

2003-12-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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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시각]

▶ 이정훈 기자


12월. 거리가 성탄의 무드 속에서 징글벨 소리가 요란하다. 거리마다 밝게 켜져 있는 성탄 트리의 불빛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인류를 죄의 무지함에서 일 깨우고자 광명천지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빛의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이 아닐까.

세계가 성탄의 축하무드 속에 젖어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동의 한 쪽 구석에서는 연일 테러의 총성이 요란하다. 그것도 성자가 탄생한 성지의 지척에서 연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가공할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자폭으로 연일 피를 부르고 있다. 왜일까. 종교적 이기심? 정치적 패권주의? 애국심? 아니면 이것저것 모두 합친 행위일까? 지구상의 전쟁은 주로 분리주의 보다는 통합주의에서 일어나고 있다. 즉 너는 너, 나는 나를 인정하려는 의식보다는 너도 나일 수밖에 없다는, 타인을 인정하지 아니하려는 이기주의가 전쟁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먹이싸움, 주도권 다툼, 정복욕으로 야망을 불태우는 전쟁 외에도 종교전쟁은 인류 역사속에서 영원히 불식되지 아니하고 거듭되어 오고 있는 고질병이었다. 특히 중세의 십자군 전쟁, 양 손에 칼과 코란을 든 이슬람과 기독교와의 전쟁이 가장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이어져 왔다.

기독교는 중세 십자군 전쟁으로 실패했던 성지탈환을 2차대전후 팔레스타인 지구를 강제 소각시키고 유태인들을 입주시킴으로써 나름대로 종교적 패권주의를 간접 성취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것이 중동전쟁으로 이어져 온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세계가 중동문제로 골치를 썩어왔고 이스라엘의 과격분자들을 비난하는 요즘에도 유독 미국만은 미온적인 태도로 관망…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등 중동사태를 부채질하며 여전히 중동문제를 미궁속에 빠트리고 있다. 특히 부시행정부는 일련의 테러행위와 관련 이를 부추기고 있는 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분류하고 과감하게 응징하겠다고 나서 더욱 이슬람교도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세계는 악의 축이 문제가 되기는커녕 부시의 패권주의에 의한 힘의 축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 증명, 당하는 국가는 테러로서나마 약자의 서러움을 달래고 있는 실정이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전쟁을 ‘정의’라는 명분으로 둔갑시켜놓고 테러를 이유로 이라크의 과격분자들을 악의 상징으로 지탄받도록 강요하고 있다. 또한 한국 역시 미국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이라크 현지에서 한인 테러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이라크 파병에 따른 진퇴 양난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테러에 대한 세계의 반응은 다양하고, 무조건적인 응징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테러를 옹호하거나 무력 항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테러와 악은 당연히 구분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테러를 자행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부시 행정부 또한 칼은 칼로 망한다는 진실의 깨달음이 절실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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