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끝맛이 긴 포르투갈 와인

2003-11-05 (수)
크게 작게

세상의 모든 상품들이 유행을 쫓는 것처럼 전세계적으로 와인산업 또한 샤도네와 카버네 소비뇽 품종이 주로 생산되며 유행을 쫓고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유행에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수천년 동안 그들만의 와인을 지켜온 나라가 바로 포르투갈이다.

대서양을 접하고있는 태양의 나라 포르투갈에서 카버네 소비뇽, 카버네 프랑, 멜로 등은 실험적인 이유로 약간 재배되고 있을 뿐, 주 품종은 투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틴타 로리즈(Tinta Roriz), 틴타 바로카(Tinta Barroca), 틴타 피녜이라(Tinta Pinheira) 등의 적포도주와 알바리뇨(Alvarinho), 루레이로(Loureiro), 트라하두라(Trajadura), 아베소(Avesso), 페데르나(Pederna) 등 귀에 생소한 이름들이 많다.

포르투갈의 와인 산업은 전반적으로 법에 의해 강한 통제를 받고 있다. 포르투갈의 와인은 네가지로 구분이 되는데, 비뇨 데 메사(Vinho de Mesa)는 테이블 와인을 뜻하고, 비뇨 레지오날(Vinho regional)은 생산도나 지방의 이름이 표기된 와인이며, 인디카카오 데 프로베니엔카 레글라멘타다


(Indicacao de provenience Reglamentada)는 줄여서 IPR로 표기되고, 데노미나카오 데 오르겜 콘트롤라다(Denominacao de Orgem Controlada)는 줄여서 DOC로 표기된다. 이 중 물론 DOC가 가장 좋은 품질의 와인이다.

잘 빚어진 포르투갈의 와인은 항상 잘 익은 과일향과 품종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며, 색이 깊고, 알콜 농도가 낮으면서 끝맛이 긴 여운을 남긴다. 특히 포르투갈 와인은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포르투갈 와인 하면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포트 와인을 먼저 떠올리지만, 포트 와인 못지않게 훌륭한 품질의 테이블 와인 또한 많이 찾을 수 있다.

포트 와인은 18세기에 와서 영국 상인들에 의해 상품 가치가 높아졌지만, 이는 단지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으므로 프랑스에서 수입되던 와인이 끊기면서 그 갭을 메꾸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지 않았다. 영국 상인들이 프랑스 와인을 대신할 와인을 찾으러 포르투갈에 왔을 때, 포트 와인은 영국인이 클라렛이라 부르던 프랑스 와인에 훨씬 못 미치는 거칠고 투박한 테이블 와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영국 상인들은 진한 적포도주에 브랜디를 섞어서 주정강화를 시킬 경우 맛도 좋아지고 오랫동안 보관도 용이하다는 점을 알아냈으며, 이리하며 지금의 포트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포르투갈의 포트 산업은 아직도 영국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테일러스(Taylor’s), 그래햄(Graham), 칵번스(Cockburn’s) 등이 잘 알려진 영국계 포트 이름이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점점 더 많은 포르투갈 회사들이 포트 무역의 주도권을 장악해나가고 있다.

지난 여름은 유럽 와인 메이커들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진 시즌이었다. 포르투갈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은주가 화씨 104도까지 올라가는 등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고, 포도나무들은 자신을 보호하느라 열매를 아예 맺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나마 열렸던 포도 중에는 더위에 말라서 건포도처럼 변한 경우도 있었다. 8월 말 포르투갈의 날씨는 갑자기 서늘해졌고, 와인 메이커들은 포도 열매가 이렇게 급격한 기온의 변화를 이겨낼 수 있을지 전전긍긍했다.

그 후 대단한 강수량을 동반한 비바람이 한차례 몰아쳤으며, 곧 더위가 이어졌다. 이처럼 변덕스럽고 혹독한 날씨를 겪고 난 2003년 빈티지는 아무도 예측을 할 수 없었으며, 포도의 수확량도 예년에 비해 많이 감소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수확된 포도의 품질은 매우 양호한 편이며 포트 와인협회는 지난 수십년간 이렇게 품질이 좋은 포도는 처음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8월의 무더위는 병약한 포도를 말라죽게 하였지만, 살아남은 포도 껍질의 향기와 태닌이 강하게 농축되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수분의 증발과 함께 당분이 높아지면서 포도주의 알콜 농도가 높아져서 좀 더 오랫동안 숙성시킬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특별히 적포도주의 강한 향과 진한 색깔, 그리고 높은 태닌을 요구하는 포트의 경우 예년에 볼 수 없이 좋은 품질의 포도를 수확하게 된 것이다.


아직 수확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2003년은 포트의 빈티지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10년동안 빈티지해로 지정된 것은 세번에 불과했다. 전년보다 약 2~3주 일찍 포도 수확에 들어간 많은 포루투갈의 와이너리들은 가슴 졸이던 여름을 견뎌낸만큼 수확된 포도의 높은 품질에 더욱 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잘 알려진 포르투갈 와이너리로는 Sogrape, Quinta de Fojo, Esporao, Quinta de Parrotes, Quinta de Pancas, Marques de Borba, Fonseca, Taylor, Graham, Churchill 등이 있다. 참고로, 킨타(Quinta)라는 단어는 영어의 에스테잇(estate)과 같은 뜻으로, 와이너리들이 자신의 포도밭에서 직접 키운 포도로 에스테잇 내의 와이너리에서 포도주를 빚기 때문에 와이너리의 규모에 비해 개성이 두드러지고 품질이 고른 와인을 생산해내고 있다.

<최선명 객원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