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배역의 동일시를 벗어난 삶

2003-10-0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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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산책]

▶ 김재범 <문학박사>


인생이 연극이라면, 연극이 아닌 진짜 인생은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주어진 배역을 자기의 참 모습인 줄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착각을 동일시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동일시를 벗어나 참된 자기를 자각(自覺)하며 살 수 있는가? 무엇보다 우선 배역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착각을 벗어나서, 항상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태어나서 자기에게 붙여진 모든 이름들이 그냥 임시로 부르기 위한 배역임을 매순간 알아채는 것이다. 노자도 『도덕경(道德經)』 둘째 구절에서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 이름을 이르면 참된 이름이 아니다)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붙여진 이름은 때와 상황,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대통령이라도 자기 아버지에게는 아들일 뿐이며, 잠자리의 부인에게는 남편일 뿐이다. 또 그의 스승에게는 제자일 뿐이며, 친구에게는 친구일 뿐이다.

다음은 『조주록(趙州錄)』에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한 때 하북(河北)의 연왕(燕王)이 군사를 이끌고 조주(趙州)의 진부(鎭附)를 점령하기 위하여 경계까지 이르렀는데, 기상(氣象)을 보는 사람이 조주 땅은 성인이 사는 곳이라 싸우면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아뢰자 연왕은 조왕(趙王)과 화친을 맺고, 조나라에 훌륭한 성인이 누구인지 물었다.
조주 관음원이라는 곳에 선사(禪師) 한 분이 계시는데 승랍(僧臘)이 높고 도를 보는 안목이 밝습니다.
두 왕이 조주선사를 찾아보기로 하고 절에 이르렀는데, 스님은 똑바로 앉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연왕이 물었다.
인왕(人王)이 높습니까 법왕(法王)이 높습니까?
인왕이라면 인왕 가운데서 높고, 법왕이라면 법왕가운데 높습니다.
조주의 이 대답에 법력이 높은 스님임을 깨달은 두 임금은 법문을 청하여 듣고 찬탄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갔다.

다음날 연왕 휘하의 선봉장이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임금에게 오만하게 대하였음을 힐책하기 위하여 새벽에 절 안으로 들어왔다. 조주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나가서 영접하니 선봉장이 물었다.
어제는 두 대왕이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으시더니, 오늘은 어째서 제가 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서 맞아주십니까?
그대가 대왕만 같다면 노승도 일어나 맞이하지는 않을 것이오.
선봉장은 이 말을 듣고 스님께 두 번 세 번 절을 하고 물러갔다.
조주선사는 세속의 왕인 인왕과 출가승려의 최고지도자인 법왕이 누가 높으냐는 시험적인 질문에 ‘인왕은 인왕가운데 높고, 법왕은 법왕가운데 높다’고 하여 세속과 출세간의 기준이 다르므로 비교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것이 바로 동일시와 착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조주선사는 법문을 들으러 스승을 찾는 이에게는 왕이라 하더라도 스승이 제자를 맞이하듯 자리에 앉아서 맞이하고, 왕의 선봉장이 신분을 가지고 따지러올 때는 세속 규범에 맞추어 벼슬이 없는 낮은 신분의 승려의 입장에서 나라의 높은 관리를 대하는 예로서 영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그 선봉장의 동일시와 착각의 어리석음까지도 일깨웠던 것이다.

동일시를 벗어나 자기의 참모습을 알려면 우선 지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된다. 나는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세속 규범을 생각하고 있으면 세속 규범을 따지는 사람이고, 돈을 생각하고 있으면 돈을 탐내는 사람, 여자를 생각하고 있으면 여자를 밝히는 사람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참된 자기는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주인공을 매순간 자각하는 사람은 항상 ‘지금 여기’의 자신을 돌아보며 살게 된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어떤 배역에도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며, 참된 자기 인생을 산다. 밥먹을 때 밥먹는 줄 알고, 똥눌 때 똥누는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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