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불편부당해야"
2003-07-26 (토) 12:00:00
▶ 본보 50년 독자 김동호옹의 끝없는 한국일보 사랑
“신문은 바로 내가 처하여 있는 사회의 살아있는 일기입니다"
한국에서부터 줄곧 한국일보를 구독 해온 김동호(東浩.90세)옹은 신문이 지닌 사명을 이와 같이 말한후 67년 미국으로 이민 올 때도 66년도 1년치를 배로 실고왔다. 또 주간 한국의 경우에는 64년 9월 21일 발행된 창간호부터 67년 조국을 떠날때까지 전부를 배에 실고온 한국일보 애독자이다. 56세때에 아버지(김대벽목사)의 초청으로 이민길에 나선 그는 "남들은 돈이 되는 것을 가져갈 것을 권유했지만 이를 뿌리치고 신문과 책 600권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김옹은 색이 노랗게 바래고 종이가 삭아 금방 부스러질듯한 신문 더미를 보여주었다. 김옹은 이 당시 실고온 신문과 그후 구독해온 신문을 박스등에 넣어 아직까지 쌓아놓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는 비가새고 건사하기도 힘들어 손자가 다니는 국민학교에 얼마전 기부했다고 밝혔다.
김동호옹은 67년 한국해운공사 소속의 화물선’진덕호’를 타고 한달여 걸려 롱비치항에 도착했다. LA지역에 거처를 마련한 그는 본국에서 우편으로 신문을 구독하다가 69년부터 로스엔젤레스에서 발행하는 미주한국일보를 구독했다. 90세의 고령이지만 배를 타고 낚시를 나갈 정도의 건강한 모습의 김옹은 "왜 한국일보를 구독하는냐 ?"는 질문에 " 불편 부당(不偏不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문을 구독하는 이유에대해 김옹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듣게 해주고 사회문제를 대신 말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는 장기영 사주를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지겟꾼들을 생각, 신문활지를 지게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감을 갖고있다"고 말했다.
김옹은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226마일 거리의 샌 루이스 오비스포 인근 애로요 그랜데(Arroyo Grande)에 3째아들(김윤길)식구와 함께 살고 있다. 우직하게 융통성 없이 일생을 살아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옹은 "신문은 시대 상황을 알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므로 논조가 자신과 맞지 않아도 보관하고 있다"면서 적절한 때에 보관하고 있는 신문을 기부할 뜻을 밝혔다.
아버지의 망명길에 함경북도 회녕에서 1913년 8월 30일 출생한 그는 해방후 월남, 대리석 조각등 온갖일을 다했었다. 미국에와서는 LA지역에서 20여년간 목수로 일하다가가 은퇴,17년전 이곳으로 와 농장일로 소일하고 있다. 가훈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김옹은 내년으로 결혼 70주년을 맞는 부인 김죽송(85세)여사와의 사이에 9남매를 두고 있는 다복한 할아버지이다.
<손수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