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소위 남의 일로 조금 바쁘다. 워낙 일복이 많은 터라 회사 다닐 때에도 바빴고, 전업 주부가 되고 나서는 남는 게 시간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만은 않다.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받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고 마음이 많이 쓰이는 일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라고 해서 상대방에게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며,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주는 마음에는 상대방도 좋아 할 것이라는, 또 고맙다 는 말을 듣고 싶은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즐겨 보는 시트콤, 프렌즈 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친구인 조이 와 피비 는 이 세상에서 상대방을 위해 하는 좋은 일들 중 자기 자신에게는 기쁨이 되지 않는, 온전히 남만을 위한 것이 있다, 없다로 언쟁을 한다. 있다 를 주장하는 피비 는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해 가면서 이를 조이 에게 보여 주려고 하지만, 결국 보여 주지 못한다. 그럼 온전히 남만을 위한 좋은 일은 없다는 뜻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 많이 주고 받는다. 고마워서도 하고 인사치레로도 하고. 얼마 전에 내가 아는 어떤 판화가 한 분이 이런 글을 보내 오셨다. 받으니 고맙고 미안하고, 주었으니 기쁘고 대견하고 한 것도 좋지만, 있으니 주고 없으니 얻었다, 그래서 되었다, 그런 생각도 나쁘지 않은 듯 합니다. 좋지 않은 가요? 고마울 것도 미안할 것도 원망할 것도 절망할 것도 없는 삶.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란 말씀도 숨겨서 하란 말이기 보다는 마음에 자취 없이 하란 말로 알아 듣고 싶었습니다. 빈손들이 나누는 주고 받음으로. 비단 사람들 끼리 뿐만 아니라 종교에서도 우린 주고 그 대가를 받기를 원한다. 교회에 헌금하거나 절에 시주하고 우린 잘 되길 기원한다. 이에 대해 불교 경전 중, 금강경 엔 이런 말이 있다. 그 무엇에도 집착한 바 없이 보시를 행할 지니, 이른바 형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할 것이며, 소리나, 향기나, 냄새나, 맛이나, 부딪침이나, 법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할 지니라. 위의 판화가의 글도 금강경의 이 구절도 둘 다 나에겐 큰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온전히 남만을 위한 좋은 일은 남을 위한다는 마음 자체가 없을 때 가능할 것이고 헌금이나 시주도 복을 바라는 마음이 없이 그저 할 뿐이어야 할 것이다. 마음에 머뭄이 없이 행하는 일이니 그 마음은 얼마나 가벼울까. 주는 마음에 대한 요즘의 나의 생각은 이렇다. 문제는 실천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