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직도 힘드세요?

2003-07-17 (목) 12:00:00
크게 작게

▶ [이초의 더불어 사는 세상]

▶ 김진태


예부터 스승의 높은 덕을 기리는 마음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엔 영감님 그림자 밟을세라 뒤에 뚜욱 떨어져서 걸어가시는 할머니들을 심심지 않게 목격한다.
한국의 시골길도 아니고 미국 ‘실리콘밸리’ 중심지의 엘카미노 선상에서 말이다. 이 광경은 칠십년대 초부터 LA 한인타운에서 심심지 않게 보이던 풍경이다.
갓 이민 온 노인들에게는 손잡고 걸어가는 서양부부들의 모습이 영 보기에 거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 차차 바뀔 줄 알았던 거리풍경이 21세기를 들어와 3년이 다 가도록 여전하다. 물론 세월이 흘러도 새로 이민 오는 노인들이 계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도 내가 알던 60년대와는 천양지차로 바뀌었을텐데도 여전히 공자님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 게 신기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앞선 영감님과 뒤에 처져 가는 마나님을 보면 우리는 금방 같이 가기가 어색해서 그러는 한국노인들인줄 알지만 서양사람들 보기엔 그저 앞에 가는 사람과 뒤에 가는 사람으로 보일 뿐 부부사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을게다.

물론 한국풍습에 달통한 예외의 서양인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다.
요즘은 고국에서도 젊은이들이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공공장소에서 거리낌없이 사랑표현을 해대는 모양인데 노인들은 그런걸 수없이 보아왔으면서도 그냥 속으로 ‘망할 놈의 세상’만 되뇌며 살아오셨는지 아니면 아예 눈 가리고 귀막이고 신문도 TV도 사절하고 산 속에서 사시던 모습으로 도미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리 여필종부가 삼강오륜에 있지만 앞서서 뒷짐지고 걷는 영감님은 스스로 멋있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뒤에서 뚝 떨어져 열심히 따라가는 마나님의 모양은 보기에 영 아니올시다.
실리콘밸리에는 몇 년 전에 ‘오륜회’가 결성되어 아이들에게도 효도를 가르치고 효자나 열녀를 발굴해 표창도 해서 효도하는 아름다운 우리네 풍습을 젊은 2세들에게 고양시키려 열심히 활동들을 하고 계시다.
어른들에게 좋은 풍습을 젊은 세대가 배우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면 가르치는 어른들은 모범을 보여야한다.
오래 전 있던 일이지만 젊은이들에게 노인공경을 하라며 당신들은 모임에서 회의도중 고함이나 지르다 두 쪽으로 갈라져 싸우는 모습을 보여서 젊은이들은 배우기에 앞서 회의가 생겼다.
어른들은 싸워도 너희들은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식의 말은 요즘 젊은 세대에겐 전혀 먹혀 들어간 소지가 없다.
젊은 부부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길을 가다 앞뒤로 떨어져서 걸어가는 한국노인들을 보았을 때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하겠는가?
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노인들은 저렇게 해도 엄마 아빠는 안 그러니 너희들은 우리를 따르라고 할 것인가?

앞뒤로 떨어져 걷는 게 부부유별 때문인지는 아둔한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그런 노인을 뵙기가 영 민망하고 혹시라도 외국인들이 알아차릴까 조마조마하기조차 하다.
서로 손은 못 잡아도 나란히 걷는 모습은 보기가 아주 좋다.
길이 좁아 일렬종대로 걸어야 할 정도는 절대 아니니 말이다.
어른들 모임에서는 젊은이와 아이들의 교육은 물론이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어른들의 교육도 아울렀으면 싶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