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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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잔 반이상 채우지 말아야

2003-06-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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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시간 지날수록 적색 연해지고 백색 진해져
와인을 삼킨 후엔 1분간 음미해야 맛 알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가깝게 즐기고 싶은데 모르는 것이 많아 쉽게 마시게 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와인과 음식은 즐기기 위한 것인데 까다로운 법칙에 얽매이면 편안하지 않다. 그러나 평소 알아두면 도움이 될 상식들을 몇가지 모아보았다.

맛보기


와인을 처음 맛볼 때, 우선 색을 보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보통 적포도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연해지고 백포도주는 황금빛을 띄며 진해진다. 그런 다음 흔들어서 냄새를 맡는데, 와인 잔를 한 손으로 덮어서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흔들 경우 향이 더 진해지므로 냄새를 더 잘 맡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와인의 향은 부케(bouquet)와 아로마(aroma) 두 가지로 나뉘는데, 와인 용어로 부케는 전체적인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을 뜻하고, 아로마는 포도 자체의 향을 뜻한다. 가끔 노우즈(nose)라는 단어도 사용되는데, 노우즈는 부케와 아로마를 통틀어서 지칭하는 용어이다. 냄새를 맡은 후에는 맛을 보는데, 보통 우리의 혀는 목구멍 가까운 곳의 뿌리 부분이 쓴맛, 가운데가 짠맛, 그리고 끝부분이 단맛을 느끼고, 양쪽 옆부분에서 신맛을 느끼기 때문에 와인이 혀 전체에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하여 맛을 봐야한다. 와인을 삼킨 후에는 약 1분동안 와인의 맛을 음미한 후에 맛이 어떤지를 결정해야 한다.


잔에 따를 때

손님을 초대해서 집이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와인은 잔에 얼마나 따르면 좋은지, 또 얼마나 자주 손님 잔의 와인을 채우면 좋을지 몰라서 걱정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와인을 잔에 따를 때, 반 이상은 채우지 않는 게 좋다. 잔에 와인이 너무 가득 차면 잔을 돌려서 향을 불러일으킬 수가 없고, 코로 와인의 향을 음미하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상대방 와인잔을 채우기에 가장 적당한 타이밍은 약 두모금 정도가 남았을 때다. 잔이 비도록 놓아두는 것은 좀 미안한 일이고, 와인이 잔에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자꾸 잔을 채우면 와인이 잔 속에 반쯤 찼을 때, 1/3 찼을 때, 그리고 1/4 찼을 때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는 그 미묘한 차이를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차가운 샴페인의 경우, 잔이 비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따르는 것이 좋다. 샴페인은 차가운 온도가 중요한데, 어느 정도 남은 잔에 또 채운다면 병을 얼음통 속에 넣어두면서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 노력이 별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온도

식당에서 와인을 주문해 마실 때 가장 불만스러운 것 중 하나가 적포도주의 온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적포도주는 품종에 따라 피노 누아나 산지오베제는 화씨 55~60도, 그리고 멜로와 카버네 소비뇽은 화씨60도~65도가 알맞은 온도인데, 남가주에서는 상온에 보관하는 적포도주의 온도가 화씨 70도가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적포도주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조화를 이루고 있던 맛과 향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과일향이 덜 하며, 알콜과 떫은맛만 부각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즐기기 힘들다. 만약 식당에서 주문한 적포도주가 적당한 온도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웨이터에게 얼음과 물을 채운 와인용 버켓을 가져다 달라고 해서 5~10분 와인을 담가 두었다가 따서 마시면 된다.


식당에서 얼음만 반쯤 채운 아이스 버켓을 와인용으로 가지고 오는 것은 틀린 것으로, 제대로 와인을 서브하는 식당이라면 물과 얼음을 반반씩 채운 버켓을 사용하여 와인의 목에서 약 2인치 아래 부분까지 얼음물 속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병의 사이즈

보통 와인병의 사이즈는 750ml이다. 두배 크기인 1.5리터 사이즈 병을 매그넘이라고 하는데, 좋은 품질의 와인일 경우 보통 사이즈인 750ml보다 매그넘에서 더 오랫동안 천천히 잘 숙성한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병 속에 들어있는 와인의 양에 비해 공기의 양이 적기 때문이다.

750ml의 병에서 10년 이상 숙성시킬 수 있는 와인으로는 보르도의 유명한 샤토들, 캘리포니아에서 최고로 꼽히는 카버네 소비뇽들, 그리고 최고 품질의 빈티지 포트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레드·화이트 차이

백포도주와 적포도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껍질과 함께 발효를 시키는가, 껍질을 빼고 발효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백포도주는 껍질을 제거하고 포도 주스만을 발효한 것이다. 그러므로 포도 껍질에서 새어 나오는 태닌의 양이 백포도주에는 훨씬 적다.

또한 백포도주는 적포도주보다 낮은 온도에서 발효된다. 적포도주가 화씨 75~85도에서 발효되는데 비하여 백포도주는 화씨 50~65도에서 발효된다. 적포도주는 예쁜 색깔을 뽑아내는 게 중요하지만, 백포도주는 포도의 신선하고 섬세한 맛과 향을 보존하는 게 중요하므로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발효시키는 것이다.

와인의 역사는 5천년이 넘지만 1850년대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미생물학이 발달하면서 포도의 발효 과정이 알려지고 포도주를 제조하는 과정의 체계가 정립되었다.

그 후 1960년대에 와서 온도제어 가능 스틸 탱크가 발명되면서 포도주 제조 과정에 또 한번의 큰 변화가 왔다. 그 전까지 만들어진 백포도주는, 날씨가 추운 독일, 샴페인, 북부 부르고뉴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신선한 과일향과 섬세한 포도의 맛을 그대로 지닌 백포도주를 찾기 힘들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역사상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백포도주를 맛 볼 수 있으니 매우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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