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혼자 마시는 와인, 맛 100% 집중

2003-05-2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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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맛에 100%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와인의 맛이 오묘한 이유 중 하나는 같은 와이너리에서 같은 해에 출시된 와인이라도 기분 좋을 때 마시는 맛과 우울할 때 마시는 맛이 다르고, 혼자 마시는 맛과 특별한 사람과 함께 마시는 맛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혼자 와인을 마실 기회도 있는데,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 마실 때와는 달리 혼자 와인을 마실 때 좀 더 심혈을 기울여서 와인을 고르게 된다. 와인의 맛을 더욱 좋게 해줄 친구나 연인이 없이 마시는 것은 한편 불안하기도 하고, 한편 와인의 맛에만 100% 집중할 수 있어서 설레기도 한다.

와인을 혼자 마실 때 어떤 와인을 고르는가 하는 것은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자면, 아주 좋은 와인은 특별한 상대와 함께 마실 때를 위해 아껴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가장 좋은 와인은 혼자서만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는 혼자 저녁 식사를 할 때 더욱 신경을 써서 상을 차리고 와인을 고른다. 혼자 대하는 저녁상은 어쩐지 초라하고 쓸쓸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계획을 잘 세워서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골라서 제대로 차려놓고 먹게 되는 것 같다.


같은 맥락에서 와인을 고를 때도 약간 특별한 와인을 선택한다. 기왕 혼자 먹는 저녁식사를 어떻게든 더 즐길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내 경우 혼자서 와인만 마시는 경우는 드물고 거의 대부분 음식과 함께 마신다.
그런가하면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 중 하나는 거의 매일 저녁 혼자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면서 질 좋은 와인을 여러 병 갖춰놓고 마신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한병에 10달러를 넘지 않으면서도 만족스러운 와인을 찾느라 늘 고심한다.

사람에 따라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날 저녁에 좋은 와인을 혼자 마시면서, 인생은 아직도 이렇게 즐길만하고, 오늘 하루도 그다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좋은 와인은 혼자 마심으로써 더 집중해서 많이 즐길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귀한 와인은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와인을 즐기는 데 특별한 룰이 없듯이, 혼자 마시는 와인 또한 개개인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선택이 다르다. 다만, 혼자 마시는 와인을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몇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할까 한다.


■ 부담없이 즐길 10달러 미만 와인들

카버네 소비뇽의 경우 10달러 미만에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은 꽤 어렵다. 하지만 칠레산 중에는 10달러 미만에도 훌륭한 제품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악마의 셀러라 불리는 Casillero del Diablo 의 2001년산 카버네 소비뇽으로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86점을 받았으며, 각종 와인 전문지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가격은 병당 9달러이다.
가끔 캘리포니아산 멜로(Merlot) 중에서 가격에 비해 훌륭한 와인을 찾을 수 있다. 2001년산 델리카토(Delicato) 멜로는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86점을 받았으며 가격은 8달러이다.

아르헨티나산 와인은 칠레산에 비해 구하기 어렵지만, 아르헨티나산 말벡(Malbec)은 가격 대비 품질이 가장 훌륭한 와인 중 하나다. 좋은 것은 병당 40달러가 넘기도 하지만, 놀튼(Norton) 와이너리의 말벡은 7달러 정도의 가격에 코스트 플러스 등에서 구할 수 있다.

이탈리아산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또한 어지간해서는 후회하지 않는 와인이면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병당 15달러의 가격이면 매우 좋은 것을 구입할 수 있고, 벨라 세라(Bella Sera)의 2002년산 피노 그리지오는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82점을 받았다. 병당 가격은 8달러. 샤도네 또한 카버네 소비뇽처럼 싼 가격에 만족스러운 것을 구하기 힘들지만, 가끔 호주산 샤도네 중 10달러 미만에도 꽤 좋은 것 을 찾을 수 있다. 린데만(Lindemans)의 2002년산 샤도네 빈 65는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85점을 받았으며 가격은 8달러이다.

■ 나홀로 즐길 때


큰병보다 적은 크기로 여러병 준비
몰래보다는 주위 사람들과 정보 공유

▲ 750ml 한 병을 혼자 다 마시기엔 너무 양이 많다. 375ml 크기의 와인을 몇 병 준비해둔다면 덜 부담스러울 것이다. 특별히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이 375ml 크기로 출시되는 지 알아본다. 생각보다 많은 와인이 375ml로 만들어지고, 브리스톨 팜을 비롯한 와인 전문 스토어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 혼자 자주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병당 10달러 미만의 매일 마시는 와인, 30달러 미만의 1주일에 한번 마시는 와인, 60달러 미만의 한달에 한번 마시는 와인, 200달러 미만의 1년에 한번 마시는 와인을 구비해두고 마신다면, 항상 똑같은 와인만 마시는 진부함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곧 좋은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집에 와인 셀러가 있는 사람의 경우, 딱 한병밖에 없는 와인은 혼자 마시기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아주 마음에 들면 나중에 특별한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2병 이상 구비해두는 좋은 아이디어다.
▲ 와인은 알콜 농도가 7~14% 사이로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술에 취하기 위해 마시거나 혼자 몰래 숨어서 마신다면 위험하다.
혼자 마시더라도 주위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당당하게 즐기고, 와인의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 세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와인을 즐기기에 인생은 짧은 편이다. 혼자라고 주저하지 말고,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가지 와인을 골고루 즐기는 용기를 갖는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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