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속 콩코드기, 퇴역결정
기술적 기적불구 만성적자
에어버스 국제협력은 성과인류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퇴역 결정으로 이 비행기를 둘러싼 화제와 재평가 작업이 한창이다.
콩코드는 항공 역사상 가장 손해를 많이 본 여객기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인 이 비행기는 유럽 합작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 성공의 초석을 다졌다.
초음속 여행의 실현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보잉은 미국판 초음속 여객기 설계를 놓고 라이벌 록히드 항공사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1971년 오존 파괴와 소음 공해를 우려, 초음속 여객기 제작에서 손을 땠다.
당시 보잉의 초음속 여객기 개발 계획은 항공기 기수가 바늘처럼 뾰족한 모형 제작에 그쳤다. 이 초음속 여객기 모형은 플로리다의 위락공원에 자리를 잡았다가 한 교회의 소유로 넘어가기도 했다. 이 모형은 수년 전 복원돼 현재는 캘리포니아주 샌카를로스에 있는 힐러 비행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서의 패배는 보잉에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영국의 항공산업은 콩코드 개발에 지나치게 막대한 예산을 투입함으로써 결국 세계 굴지의 항공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 와중에서 보잉은 세계 최대의 항공사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의 항공역사학자 로널드 E.G. 데이비스는 말한다.
콩코드는 만성 적자에 허덕였지만 언론에서는 항상 사랑을 받았다.
“적은 탑승 인원에도 불구하고 콩코드만큼 언론의 초점이 많이 모아진 항공기는 없었다. 콩코드는 기술적으로는 기적을 일궈냈지만 경제적으로 실패작이었다”데이비스는 설명한다.
콩코드는 항공기 소재의 개발과 조립기술에서 혁신을 이룩한 것은 물론 국가간 협력 측면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콩코드의 개발은 유럽에 커다란 플러스가 됐다. 콩코드가 없었더라면 지금 같은 에어버스의 성공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힐러 비행박물관의 고든 원은 말한다.
콩코드의 퇴역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언젠가 초음속 여행 대중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산업의 현 추세, 즉 연료효율이 보다 좋은 초대형 여객기 개발 움직임으로 초음속 여객기의 재등장은 21세기 후반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초음속 여객기 시대를 향한 노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앞으로 50년 혹은 100년 후에나 올 것이다”항공업계 전문가 스캇 해밀턴은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