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봉제업계 스패니시 학습 바람

2003-03-2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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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따 쁘레빠라도 또도” <준비 다 됐어?>

“작업지시 힘들고 의사소통 못해 답답”
한인들 업무 끝내고 늦은 밤까지 공부
일부 학원 전문강좌까지 개설

“에바스 라 미땃, 에스따 쁘레빠라도 또도”(반만 가져가, 준비 다 되었니?)


강사의 스페인어 발음을 열심히 따라하는 표정이 무척 진지하다. 라틴계 직원들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답답함이 자신감으로 바뀌어 가는 순간이다.

한인 봉제업계에 스페인어 학습 바람이 불고 있다. 종업원 90%이상이 라틴계인 다운타운 한인봉제업체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늦은 밤까지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 이같은 한인들의 스페인어 학습 열기로 최근에는 봉제전문 스페인어 강좌들이 일부 학원에 개설되고 있다.

지난 금요일 밤 다운타운의 한 스페인어 교실에는 30여명의 한인 봉제업체 종사자들이 스페인어 배우기에 열심이었다. 5주째 매주 금요일 밤마다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는 ‘스톤’사 헬렌 강 매니저는 “짧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직원들과의 대화하지만 다섯 마디 해야 할 것을 한마디밖에 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 머리에 잘 들어오진 않지만 6개월 동안 스페인어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50이 훨씬 넘은 나이다.

이 스페인어 교실에는 20대 젊은 여성부터 60대 남성까지 현장에서 절실하게 스페인어를 필요로 하는 한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남편과 함께 봉제업체에서 일하는 ‘페피’사 최인우씨는 주말 늦은 밤까지 스페인어를 배우게 된 이유를 “히스패닉 직원들과 의사소통이 안돼 너무 답답했다. 농땡이치는 직원에게 뭐하고 한마디로 꼬집어 주고 싶은데 정작 할말은 못하고 표정만 굳어져 사이만 멀어지는 것 같아 기본적인 대화만이라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봉제 스페인어 교실 수강생들은 대부분 봉제업체 업주들이나 매니저들로 한결같이 봉제용어를 스페인어로 말할 수가 없어 라틴계 직원들에게 작업지시가 가장 힘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야파’사에서 패턴메이커로 일하는 송은희씨는 “샘플메이커나 프로덕션 파트 모두 라틴계 직원들이어서 작업과정에 문제가 발생해도 의사소통이 힘들었다”고 했고, 제임스 박씨는 “스페인어 봉제용어를 몰라 정확한 작업지시를 내릴 수 없어” 이제 밤을 새워서라도 스페인어를 배울 수 밖에 없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봉제 전문 스페인어 강좌를 개설한 마틴 백 강사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봉제업 종사 한인들이 최근 크게 늘어 봉제전문 강좌를 개설했다.

신청자가 많아 강좌를 늘릴 계획”이라며 “기본 문법과정 2개월, 기본 회화과정 2개월이면 히스패닉종업원들과 작업과정에서의 기본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앞으로 한인 봉제업소의 라틴계 직원들을 상대로 한국어 강좌도 개설할 생각이다.

봉제업계 관계자들은 종업원들의 90%이상이 라틴계인 업계에서 스페인어 학습열기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면서 최근 주 노동관계법이 더욱 강화되고 있어 봉제업계 한인들의 스페인어 습득은 이제 필수라고 말하고 있다.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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