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검은 옷 천사가 배달해주는 포도주

2003-01-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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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오레올 레스토랑’ 와인타워


철사를 몸에 매단 까만옷의 여인들이 주문을 받고
메뉴엔 4,000여병 수록 저장된 것만도 10,000병

LA에 살다보면 손님을 많이 치르게 된다. 동부에서 한국으로 가는 길에 들르는 친지, 한국에서 다시 동부로 돌아가며 들리는 친구, 한국에서 관광차 오는 친지들, 어학 연수 온 먼 친척의 자녀,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시민권을 따게 하려고 온 친구의 시누 등등. 덕분에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물론이고 그랜드 캐년과 라스베가스를 1년에 한두 번씩 꼭 다녀오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라스베가스다.


이곳의 고급 호텔들에는 어디에도 비견하기 힘든 훌륭한 식당과 와인 콜렉션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몇 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한 식당들의 지점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가기 전부터 이번엔 어떤 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할까 하는 생각에 들뜨게 된다.

그동안 다녀본 곳 중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곳은 한인들에게 ‘탤런트 손지창 장모가 잭팟을 터뜨린 곳’으로 유명한 ‘만달레이 베이’ 카지노 호텔에 위치한 ‘오레올 (Aureole)’ 레스토랑의 와인 타워였다.

‘오레올’은 ‘벨라지오’ 카지노 호텔에 있는 ‘르 써크 (Le Cirque)’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뉴욕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같은 이름으로 라스베가스에 지점을 연 곳이다. ‘오레올’ 레스토랑은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천장부터 바닥까지 투명한 유리로 된 사각 타워 속에 와인이 가득 찬 모습을 볼 수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철사를 몸에 매단 아름다운 몸매의 여성이 몸에 착 달라붙는 까만 옷을 입고 마치 천사처럼 그 타워 속을 오르락내리락 날아다니며 손님이 주문한 와인을 꺼내오는 광경이다. 이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에는 4,000 여 병이 수록되어 있어서, 리스트를 받아드는 순간 전화번호부 책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와인 타워 속에는 만병이 넘는 와인이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갔던 나는 7 코스로 나오는 메뉴와 함께 각 코스마다 음식에 맞춰 나오는 와인을 시켰다. 코스 디너(7-course fixed dinner)의 경우, 약 3년 전 갔을 때 1인당 65달러였고, 매 코스마다 음식에 맞춰 나오는 와인을 함께 시킬 경우 45달러가 추가되었다. 요즘에는 매 달 그 달의 특선 7 코스 디너가 따로 준비되어 있으며, 가격은 95달러이다.

‘오레올’ 레스토랑은 매우 넓은 홀을 여러 방으로 나누어 놓았기 때문에 자리에 앉으면 아늑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앉은 곳은 ‘백조의 방 (Swan Court)’라고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레스토랑 바로 옆에 잔잔한 호수와 같은 분위기의 연못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곳에서 정말 아름다운 자태의 백조들이 조용히 물위를 오가는 곳이었다. 각 테이블마다 백조가 오가는 물가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따로 있었으며, 그 문을 통해 나가면 물 옆 패티오에 예쁜 개인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나갈 필요도 없이 그냥 내 자리에 앉아 식사하며 백조가 오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 ‘백조의 방’에서 식사를 하면 분위기 값으로 코스 디너에 1인당 10달러씩이 추가되었다. 덕분에 LA로 돌아와서는 수주간 궁색한 생활을 해야 했지만, 음식도 와인도 와인 타워 속에서 날아다니던 천사도, 물위의 백조도 모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얼마 전 이 ‘오레올’ 레스토랑에서 와인 메뉴를 전자 메뉴로 바꾸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좀 더 편하게 주눅들지 않고 원하는 와인을 주문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했으며 와인 타워 속을 날아다니는 검은 천사의 모습이 안 보이는 자리에 앉은 고객도 전자 메뉴의 화면을 통해 동영상으로 볼 수 있고, 몇 병 없는 희귀한 와인을 주문하였을 경우 정보가 실시간 업데이트되어 메뉴에서 사라지게 프로그램 되어 있다고 한다. 더불어 메뉴에서 음식을 고르고 그 옆에 있는 와인 버튼을 클릭하면 선택한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이 열 가지 정도 추천된다고 하니, 웨이터나 소믈리에에게 와인에 대해 묻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고객에게는 얼마나 편리한 일인지 모른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의 맛을 더 돋우어주는 와인과 함께라면 더욱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오레올’과 같은 레스토랑의 노력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겁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선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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