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스없이 불에 구운 스테이크”

2003-01-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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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김 커맨더

▶ 내가 좋아하는 음식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눈이 크고 부리부리하며 보스 기질을 가진 남성적인 사람(남녀를 물론하고) 중에 미식가가 많다. 폴 김 커맨더도 최근 발견한 그런 사람중 하나. 그는 고기를 즐기고, 고기 맛과 음식 맛을 아는 경찰이다.

“구운 스테이크를 제일 좋아합니다. 오븐에 찌거나 프라이팬에 구운 거 말고요. 직접 불에 브로일해서 구운 스테이크요. 미디엄 레어 정도로 구워서 소스 없이 먹지요.”
“양고기는 민트 소스에 호스 래디시를 섞어 먹으면 최고예요. 보통 호스 래디시 말고 진짜 호스 래디시를 갖다 달라고 하면 주방에서 진짜를 내옵니다.”

“샐러드 주문할 때는 드레싱 대신 올리브 오일과 애플 비니거를 따로 갖다 달라고 부탁해 직접 뿌려 먹죠. 잘못하면 드레싱을 너무 많이 뿌려와 드레싱을 먹는 건지, 샐러드를 먹는 건지 모르거든요.”
이 정도면 음식을 먹을 줄 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맛을 아는 폴 김 커맨더가 즐겨 찾는 식당은 한인타운 8가와 놀만디에 위치한 ‘테일러스 스테이크 하우스’. 한인타운 근방에 남은 마지막 고급 스테이크 집으로 그가 30년 가까이 애용하는 식당이다. 지금도 한 달이면 몇 번씩 찾는데 그 이유는 좋은 고기를 쓰기 때문에 음식의 질이 한결같이 맛있고, 종업원들이 모두 오래 일해온 베테런들이며, 시간을 두고 편안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한국식당에 가면 먹자마자 그릇부터 치워버리고 빨리 가라는 것 같아 불안해서요.” 일침을 놓는 김 커맨더는 한국식당들이 타인종 고객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안이한 경영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우리 음식이 분명 일식이나 중국식에 못지 않게 훌륭한데, 미국인 입맛과 분위기에 맞도록 개발을 못한다는 것이다. 타인종뿐 아니라 2세와 3세등 한인 자체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한식만은 1세 스타일을 고집하면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에는 한인타운 곳곳에 좋은 미국식당이 많이 있었는데 백인들이 나가면서 다 없어졌다는 김 커맨더는 그래도 죽어가던 윌셔 거리가 한인들에 의해 살아났다며 다운타운과 웨스트사이드를 잇는 미드윌셔 상권을 한인들이 주도해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인타운이 많이 좋아졌어요. 더 안전해져서 밤이고 주말이고 나올 수 있도록 우리 경찰도 치안에 힘써야겠지요”

직업적 발언도 잊지 않는 커맨더 김은 15세 때 이민 온 1.5세 올드타이머로 한국음식도 물론 매우 즐긴다. 가장 먼저 꼽는 것이 더덕구이. 그런데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고추장 발라 구운 더덕이 아니라 간장에 구운 더덕이란다. 고향인 평북식이 그렇다는 설명. 다음으로는 물냉면, 그리고 사시미를 꼽는 김 커맨더는 한인으로 경찰 최고위직에 오른 ‘무서운 경찰’ 이미지와는 달리 식사중 훨씬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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