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흰머리 타령

2002-11-0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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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모의 마음

작년 연말 우리 교인 중 한 분이 떡집에 가면 검은 콩가루와 검은 깨 가루를 파는데 그것을 매일 한 숟갈씩 물에 타서 먹으면 일년만에 머리가 새까매질 거니까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봤다는 말도 곁들여서.
50이 넘도록 검은머리로 젊음(?)을 과시하고 있던 내가 요 몇 년 사이에 거의 반백의 머리를 갖게 됐으니 어지간히 안됐었나 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머리 염색을 권해서 남편에게 넌지시 얘기를 꺼냈더니 대뜸 “그 모습 그대로의 당신이 좋은데.”
한번은 교회에 새로 오신 분이 눈에 띄기에 예배 후 인사를 드렸더니 “혹시 이 교회 권사님이세요?”라고 묻는다. “저요? 저는 목사님과 한집에서 사는 사람이에요.”라고 당당히(?) 내 소개를 했다(이런 식으로 소개를 하면 으레 목사의 아내로 알아볼 줄 알고). 아, 그런데 이 부인 좀 보소. 왈, “어머나, 목사님의 모친이시군요. 아유- 반갑습니다.”(이건 비밀인데 남편은 무척 젊어 보인다)
그런 해프닝이 있고부터는 다시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물들일까 말까. 남편은 그대로가 좋다고 하고. 에라 모르겠다. 남편이 제일이니 남편을 따라야지. 한번 물들이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해야하니 그것도 꽤 귀찮은 일일텐데 잘됐지 뭐(갈등은 싹 가시고).
드디어 물들이기를 포기하고 할머니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나에게 물들이지 않고도 머리가 검어질 수 있다는 이 소식은 귀가 번쩍 뜨이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요즘 세상에 머리 허연 할머니 모습을 누가 원하노-손자를 넷이나 둔 진짜 할머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 이튿날 당장 떡집에 갔더니 ‘1월3일까지 휴업함’. 정확하게 1월4일부터 먹기 시작하여 거의 하루도 안 빠뜨리고 우유 한 컵에 한 숟갈씩 타서 매일 아침 남편에게 먼저 상납(?)하고(열녀인 듯 폼 잡아가며) 식사 대신 열심히 먹는데 기대만큼 변화가 보이질 않는다.
매일 머리 색깔을 살펴보지만 여전히 거기서 거기다. 어떤 분은 뒷머리가 많이 검어졌다면서 효과가 있는 모양이라고 격려(?)를 해 주지만 내 기억으로는 뒷머리는 처음부터 검었던 것 같거든.
이렇든 저렇든 내 눈에 띄지도 않는 뒷머리가 아무리 검어진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앞머리가 검어지는 기쁨에 비할 수 있으랴.
한가지 덤으로 얻은 게 있다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지 않는 것. 남녀를 불문하고 탈모 공포증(?)이 만만찮은 이 세상에서 대머리 방지-이게 어딘가.
비록 목적 달성은 못하더라도, 혹은 더디더라도(희망사항) 덤으로 얻은 대머리 예방으로 만족해야지. 거기다 검은머리라면 금상첨화일 테지만.
아, 참, 잊을 뻔했네 설혹 이대로 계속 흰머리로 지내게 되더라도 괜찮다. 천국에 가면 나는 기막히게 젊고 아름다워질 거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으로.
신은실
(오렌지카운티한인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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