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방법-I
"학교에 갔다온 녀석이 공책을 보면 써 놓은 것은 없고, 책가방을 보면 CD나 컴퓨터 게임이나 들어 있고, 별별 정크가 다 있어요. 지저분한 아이라고만 생각할지, 혹은 공부에 아주 관심이 없는지…" 교육에 열성인 중학생 민기 어머니의 걱정이었다.
"우리 연준이의 성적이 떨어져 얼마 전 공책을 보자고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노트를 하기는 했는데 3의1 정도는 낙서(doodling)로 가득 차 있었어요. 왜 이런 것이냐고 물으면 강의시간에 쓸 것이 없다나요!"
이상은 10대 자녀들에게 가장 심한 증세의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위의 두 예는 사실상 문제아들의 행동은 아니다.
크로포드 박사(Crawford)의 연구에 따르면 강의시간에 노트를 써가면서 듣는 학생이 훨씬 성적이 우수했다고 보고한다. 이 연구는 비슷한 성적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그냥 듣게만 하고 노트 필기를 못하게 했다. 둘째 그룹은 노트 필기를 하게 했다. 그 이후 (1)강의가 끝나자마자 (2)1주일 후 (3)몇 주일이 지난 후에 시험을 봤다. 시험도 다양하게 주관식, 객관식, 여러 가지로 보게 했다. 그 결과 시험은 언제 봤건, 또 시험이 어느 형식이었건 강의 중 노트 필기를 한 그룹이 훨씬 월등하게 점수가 높았다.
강의 노트 필기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1. 강의 내용이 책에도 있으니 책에 줄을 긋거나 표시를 하는 법(미국에선 책이 학교 소유물이기 때문에 책에 줄을 칠 수 없음).
2. 책에 강의 내용이 있더라도 자기가 직접 노트에 필기하는 방법.
3. 선생님이 직접 요점을 잡아서 그것을 한 장씩 학생에 주는 방법.
4. 강의 도중 필름, 비디오 등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그 때 (a)이 화면을 보고만 있는 경우 (b)노트를 써 가며 보는 방법.
5. 남의 노트를 베끼는 경우의 다섯 가지 방법을 가지고 연구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보면,
-가장 효과적 방법은 학생이 직접 노트 필기를 하는 것. 학생이 직접 자기가 만든 문장으로 자기식 대로 필기한 것이 너무나 효과적이었다.
-두번째 효과적 방법은 책에 표시(high-lighting)하는 것.
-그 중 가장 효과가 낮았던 방법은 선생님이 요점을 미리 다 잡아주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이 겉으로 보기에는 효과적인 것 같았으나 오히려 그 요점만 믿고 강의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고 또 이 요점을 중심으로 공부는 했는데 이해는 안 됐다는 결과를 보였다.
선생님의 요점을 칠판에서 베끼는 것은 선생님이 직접 복사 해 준 것보다는 효과적이었으나, 별 큰 차이는 없었다.
남의 노트 베끼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했느냐에 크게 좌우되었다고 했다. 즉, 남의 노트의 성과를 못 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결과는 필름이나 비디오를 보는 경우 화면을 보면서 노트를 하면 오히려 배우는데 지장이 있었다. 화면이 일단 다 끝난 후 정리를 하고 노트 필기를 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배운 것으로 드러났다. 필름이나 비디오, 영화 볼 때만 빼고는 늘 노트 필기를 하는 것이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 화면의 경우도 끝난 후라는 것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금방 필기를 해 놓은 것이 큰 효과를 본다.
여기서 교육자의 입장에서 볼 때 큰 교훈을 하나 배울 수가 있다. 공부는 항상 자기가 참여자로 직접 뛰어들어가서 적극성을 보일 때만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많은 부모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자녀를 공부시키려고 온갖 애를 다 쓴다. 학교에 보내는 것은 물론 과외도 (1)부모가 직접 붙들고 앉아 시키거나 (2)가정교사를 두거나 (3)학원에 보내는 등 참으로 가지각색이다. 여러 부모들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냐?’라는 질문들을 많이 하신다. 그 대답은 이 기사에 있다. 그러므로 부모 스스로가 답을 내리셨으리라 생각한다.
밥은 입에다 넣기까지는 누가 해줄 수 있다 해도 그 밥을 씹어서 삼켜야 영양가가 있듯이 공부도 자기 스스로가 씹고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 너무 음식을 입에까지 넣어주면 언젠가는 씹어 넘기려 들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공부만은 누가 못 해준다. 듣는 척, 읽는 척, 쓰는 척까지는 해도 남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는 자기 스스로가 뛰어들어가고 싶어야 하고 직접 참여하여 애쓰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에 주입식 교육은 ‘생각하는 능력’보다 외우는 일(스킬, skills)이 많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도 그것을 외우기만 하면 되니까 어느 정도는 가정교사, 학원, 부모가 직접 붙들고 시키는 일 등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교육은 이 스킬(구구단 외우기, 각주의 수도 외우기 등) 몇 개만 빼고는 거의 다 ‘생각하는 능력’ 발달이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한다.
가끔 우리 어른들은 이런 말을 한다. "부모 잘 만나 공부도 잘 한다." 물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부모의 덕이라 하겠지만 공부만은 남이 해주지 못한다. 강의를 매일 열심히 들어도 자기가 애써 듣고,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강의도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