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메리칸 푸드 ‘거터’

2002-08-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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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외식

"신문에 나온 식당 시간 내서 찾아갔더니 뭐 이런 후줄근한 곳을 가보라고 썼어!" 이번 주에 소개하는 거터(The Gutter)에 가 본 독자들 가운데 혹 이런 푸념이 나올 수도 있겠다.

만약 당신이 분위기 있는 고급 식당을 기대한다면 도시락 싸 가지고 따라다니며 방문을 말리고 싶다. 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조금은 질박한 음식을 맛볼 준비가 되어있다면, 그리고 수더분하고 편안한 진짜 사람들(Real People)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면 권하고 싶은 곳이 거터이다.

거터를 소개한 이는 예술가 친구. 좋은 식당 많이 알고 있는 멋쟁이라 이번에는 또 어떤 멋진 곳을 소개받을까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 분명 이 주소가 맞는데 식당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 허름하게 금방이라도 문을 닫을 것 같은 Mr. T’s Bowl 건물이 나온다. ‘여기 맞아?’ 하며 기웃거리는데 친구가 손을 흔든다. 일본 냄새가 퐁퐁 풍기는 등이 밝혀져 있는 바의 사진은 거터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다른 좌석들은 파마 머리 빗질도 하지 않고 졸린 눈을 비비며 문열러 나오는 게으른 여자처럼 형편없다.

이쯤 되면 도대체 얼마나 음식이 맛있길래 이처럼 단장을 하지 않고 손님을 맞을 수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마치 한국의 기사식당 음식 맛이 끝내줬던 것처럼, 그래. 그 표현이 가장 어울리겠다. 거터에서는 기사식당처럼 부담 없는 햄버거와 샌드위치들 준비하고 있는데 그 맛이 장난이 아니다.

위스콘신주에서 온 쌍둥이 자매, 리시와 케이티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배운 독특한 조리법으로 별다를 것도 없는 메뉴, 샌드위치를 입맛 다시게 만들어 낸다. 이 집의 별미인 핫 미트로프 샌드위치(Hot Meatloaf Sandwich). 도대체 그 비법이 뭘까 살짝 엿봤더니 석류로 만든 그레이비를 더하고 있었다. 튜나 멜트(Green Chile Tuna Melt)는 볶은 고추를 더해 매콤한 맛이 그만이고 가장 평범한 B.L.T. 샌드위치도 메이플 시럽에 재 놨던 베이컨을 사용해 맛이 차별화 된다. 육즙이 풍부한 햄버거는 볶은 양파에 스위스 치즈가 녹아들어 부드럽다.

엘비스(Elvis)란 이름의 샌드위치는 땅콩 버터와 과일 잼, 바나나 튀김과 베이컨을 곁들인 생전 처음 먹어보는 메뉴. 맛은? 어머, 세상에. 엘비스의 목소리처럼 달콤한 맛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다. 함께 내오는 프라이는 감자를 얇게 저며 튀겨내 바삭하고 고소하며 아티초크 감자 샐러드, 수프도 맛있다. 버클리에서 철학을 전공한 케이티, 공부나 할 줄 알았지 과연 요리를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마요네즈, 케첩, 겨자까지 직접 만든다고 하니 김치 직접 만들어먹는다는 친구만큼 경이롭다. 주말 아침의 브런치도 훌륭하다.

▲종류: 아메리칸 푸드 ▲오픈 시간: 점심은 화-금요일 11시-2시. 저녁은 화-토요일, 7시30분-자정. 토·일요일은 오전 9시-오후 2시까지 브런치도 제공된다. ▲가격, 2-7달러. ▲주소: 5621 1/2 N. Figueroa Ave. LA, CA 90042 가는 길은 110번 N. → 52nd St. Exit 우회전 → 56th St.에서 좌회전해 볼링장 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된다. 간판이 따로 없으니 주소를 확인하고 맞으면 들어가시길. ▲전화: (323) 256-4850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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