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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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추방

2001-04-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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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법

▶ 김성환 변호사

과년한 노처녀 순자는 올해 서른으로 나이는 많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직장이 없는 터라 하루하루는 지루하고 답답했다. 그래서 순자는 TV 드라마의 문제가 많은 주인공들이 공식처럼 그렇듯, 모든 것을 털고, 미국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렇지만 순자처럼 뚜렷한 직장이 없는 20대 후반의 여자들은 입국비자를 받는 것부터 쉬운 것이 아니다.

서울 소재 미영사관은 뚜렷한 직업이 없는 20대 후반 여자들이 미국에 오면 계속 눌러앉는다고 보기 때문에 비자를 잘 내주지 않는다. 생각다 못한 순자는 급한 마음에 미국 입국을 도와준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이민 브로커를 찾아갔다. 미국 입국을 보장한다는 이 브로커 말만 철석같이 믿고, 브로커가 준 가짜 영주권을 손에 쥐고 티화나를 통해 멕시코 국경을 넘다가 그만 이민국 요원에게 체포되었다. 순자는 현재 캘리포니아 주 밀입국자 구치소에 구류되어 있다.


-순자의 꿈인 미국 체류가 물 건너간 것인가?


▲거의 그렇다. 왜냐하면 가짜 영주권을 갖고 월경하다 체포되었으므로 96년 개정되고, 97년 4월부터 시행된 긴급 추방(Expedited Removal)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긴급 추방이란 이민국이 조작된 위조서류나 적법한 서류 없이 입국한 사람을 국경에서 체포했을 때 추방재판이라는 별도 절차 없이 약식으로 추방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민국은 자체 내에서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쳐 밀입국자에게 추방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긴급 추방을 당한 사람은 향후 5년 동안 미국에 입국할 수 없다. 두번 이상 긴급 추방을 당한 사람은 20년 동안 미국 입국을 할 수 없다.


-그럼 순자가 미국 체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순자가 망명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미국에 적법 체류가 가능하다. 망명신청이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이유로 본국에 들어가면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을 때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망명신청을 한다고 해서 신청이 모두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담당 이민관이 신청자의 망명사유가 믿을 수 하다는 판단이 서면 망명심사관에게 심사를 의뢰한다. 만약 망명심사관 역시 망명사유에 이유가 있다고 보면 본격적인 망명절차를 밟을 수 있다. 한편 이민국이 망명심사를 하고 있는 동안 밀입국한 망명신청자는 계속 구류상태에 있게 된다.


-불행하게도 순자는 한국에서 온 밀입국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망명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순자에게 다른 길은 전혀 없는 것인가?

▲이민국은 설사 긴급 추방 대상이라도 추방이 적절하지 않거나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이 들면 추방을 하지 않을 권한이 있다. 밀입국자가 정부가 개입한 재판의 증인일 때이다. 가령 순자의 밀입국을 위해 가짜 서류를 만들어 주고, 순자를 국경까지 데리고 왔던 사람들의 조직을 일망타진해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 피해를 본 증인으로 미국에 있어야 할 경우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순자의 긴급 추방이 일시적이나마 정지될 수 있다. 둘째는 순자에게 긴급을 요하는 건강상 하자가 발생했다면, 이때 역시 순자가 미국 체류를 계속할 수 있다. 가령 출산이 임박했다면 긴급 추방이 일시 정지될 수 있다.


-연방법원에 이의신청을 하면 체류가 연장될 수도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연방법원에 구속 적부심(Habeas Corpus)을 신청하면 연방법원은 심사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구속 적부심의 기준은 첫째 신청자가 외국인인가, 둘째 신청자가 이민법 관련 규정 때문에 추방명령을 받았는가, 셋째 신청자가 영주권자, 난민이나 망명자 신분이냐 아니냐, 넷째 관련자가 추방명령을 받았느냐를 결정할 때는 이런 명령이 실제로 내려졌는지만 판단한다. 연방법원은 신청자가 실제로 입국 자격을 갖추고 있느냐는 묻지 않는다. 결국 순자 같은 사람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 밀입국하다 잡혔지만 추방재판을 받는 도중 본드를 내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인가?

▲96년 제정된 이민법이 시행된 97년 4월 이전이라면 모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맞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밀입국자들이 체포되면 망명사유가 없는 한 곧바로 추방된다고 보아야 옳다. 97년 4월 이전만 본드를 내고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었다. 그렇지만 96년 개정이민법에서는 밀입국 도중 국경에서 체포되었을 경우 더 이상 본드를 내고 석방될 수 있는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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