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조 왕건’ 그들의 최후

2001-03-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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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나 둘 스러지기 시작한다. 군웅이 할거하던 혼란스런 후삼국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시대의 영웅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는 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이는 곧 궁예의 몰락을 의미한다.

KBS 1TV <태조 왕건>이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주요 인물들의 종말이 서서히 다가서고 있다. 궁예를 좌지우지하며 모략을 일삼던 아지태가 드디어 죽음을 맞이한데(102회, 18일 방송분) 이어 피비린내 나는 죽음이 줄 지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결말은 궁예다.

▲아지태와 강장자-강장자, 아지태에 연루 관심법에 죽음

정치권에까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아지태가 결국 궁예의 손에 죽었다. 궁예의 총애를 등에 업고 정사를 좌지우지했던 그는 결국 궁예의 눈밖에 나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아지태의 죽음으로 인해 잠재돼 있던 왕건과 궁예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아지태의 죽음은 앞으로 이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시작을 의미하며 이는 곧 왕건의 고려 건국이 비롯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강비(연화)의 아버지인 강장자의 목숨도 바람 앞의 촛불 같다. 아지태 사건 당시 이에 연루되어 궁예의 의심을 사기 시작한 강장자는 결국 궁예의 관심법에 걸려 죽게 된다(108회 방송분).

▲강비 연화-궁예·왕건에 버림받고 이슬로

"왕건과 강비는 정혼한 사이였다." 아지태가 국문장에서 죽으면서 남긴 이 말로 인해 강비의 목숨도 위태롭기만 하다. 궁예는 점점 왕건과 강비 사이를 의심하게 되고 두 아들 신광과 천광마저 자기 자식인지 회의하게 된다.

마침내 아버지마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왕건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냉정하게 거절 당한다. 결국 궁예에게 직접 찾아가지만 역시 죽임을 당할 뿐이다(116회 방송분).




궁예는 강비에 이어 신광과 천광의 두 아들마저 죽이면서 거의 미친 상태에 이른다. 이는 곧 백성들은 물론, 부하들로부터 신망을 잃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며 왕건의 입지만 더욱 굳혀주게 된다. 강비의 죽음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궁예로 기울어 있던 저울추가 왕건 쪽으로 기울게 된다. <태조 왕건>에서는 강비의 죽음 다음 회에 곧바로 왕건의 정변을 다룰 예정이다.

▲종간-궁예와 함께 몰락

정사에는 종간에 대해 ‘왕건이 정변이 나자 제일 먼저 종간을 잡아 죽였다’는 한 줄 밖에 없다. 왕건에게는 종간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며 앙숙이었음을 의미한다.

종간 역시 궁예의 몰락과 궤를 함께 한다. 제작진에서는 그의 최후를 고민하고 있다.

왕건이 정변을 일으킨 후 종간을 제일 먼저 체포하기는 하지만 궁예보다 먼저 죽일지 또는 궁예의 죽음을 전해 듣고 죽는 것으로 처리할 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중. 언제 죽든 그의 죽음은 궁예의 완전 몰락을 의미한다.

▲궁예-자결로 영웅다운 최후

홈페이지 게시판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 바로 궁예의 죽음. 궁예의 죽음은 오는 5월 중순께(120회 예정) 이뤄질 전망이다.

삼국사기에는 왕건이 정변을 일으키자 변복을 하고 몰래 빠져 나가 산야를 전전하다 허기를 견디지 못해 보리 이삭을 잘라 먹다 사람들에게 들켜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영웅의 최후치고는 너무 비참해 제작진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삼국사기의 내용이 어차피 승자인 왕건 중심의 역사인 만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며 픽션을 가미하는 것도 괜찮다는 반응이다. 또 한편 다른 네티즌들은 궁예를 미화하는 것은 안된다며 삼국사기대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작진은 고민 끝에 자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변이 나자 궁예는 몇몇 군사를 이끌고 경기도 가평과 양평 사이에 위치한 울음산(현재의 유명산)으로 퇴각한다. 이를 뒤쫓던 왕건이 더 이상 쫓을 필요가 없다며 돌아서려 하자 궁예가 직접 나서 떳떳하게 죽음을 맞겠다며 장렬하게 자결한다는 내용. 과연 영웅의 최후답다.

철원 등 경기 지방에는 궁예에 관한 전설과 민담이 많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울음산이라는 이름도 ‘궁예가 최후를 맞으며 땅을 치며 후회했다’는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태조 왕건>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궁예 중심으로 진행돼 오던 이 드라마도 궁예의 죽음과 함께 비로소 제 이름값을 하게 된다.

이상목 기자 mosquito@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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